숲노래 삶읽기 2022.11.27.

나그네채에서 6 새우깡 5000원



  싸움터(군대)에 1995년 11월 6일에 끌려갔다. 1997년 12월 31일에 풀려났다. 나는 싸움터살이(군대생활)를 하며 딱 하루만 ‘외박’을 나갔다. ‘외출’조차 아예 나간 적이 없는데, 멧꼭대기에서 새벽부터 한나절을 걸어서 나갔다가, 일찍 해가 떨어진 멧길을 다시 한나절 낑낑대며 걸어올라오기도 싫을 뿐더러, 고작 한나절쯤 바깥바람을 쐬면서 술을 마신다 한들 달라질 일이 없다고 여겼다. 이런 데에 돈을 쓰기 싫었다. 품삯(군인 월급 + 격오지수당(또는 생명수당) + 연초수당)을 푼푼이 모아서, 나중에 이곳을 떠나면 책값으로 삼으려고 생각했다. 싸움터에서는 ‘진급휴가’라는 이름으로 ‘일병·상병·병장 진급휴가’를 석 판 받는다. 나는 강원도 양구 백두산부대에 깃든 터라, 다른 싸움터보다 말미가 이틀 길었다. 멧꼭대기 싸움터는 밖에 나가고 들어오는 데에만도 이틀이 걸렸다. 따로 ‘포상휴가증’을 석 판 받았으나 하나도 안 쓰고 뒷내기하고 윗내기한테 줬다. 열아홉 살에 짝을 맺어 아이도 둔 분들이 하릴없이 싸움터에 끌려왔더라. ‘아이 둘 있는 사내’는 ‘군면제’였는데,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끌려왔고, 윗분(중대장·행정보급관·대대장)들은 쉬쉬하며 그냥 두었다. 딱한 또래한테 내 휴가증을 슬쩍 주었고, ‘상병 진급휴가’ 보름치조차 둘로 갈라서 몰래 나눠 주었다. 우리 어버이는 내가 싸움터에 끌려간 뒤 전화도 없고 글월도 뜸한데다가 말미조차 안 나오니 몹시 걱정했단다. 어느 날 불쑥 찾아오셨더라. 어쩔 길 없이 처음이자 마지막 외박을 하려고 ‘양구군 동면’에서 밥을 먹고 길손집에서 하루를 묵는데, 밥집마다 미쳤는지 세겹살 한 접시(1인분)가 1만 원이요, 새우깡 한 자루에 5000원일 뿐 아니라, ‘여인숙보다 떨어지는’ 길손집 좁다란 한 칸이 7만 원이더라. 1997년 여름께였다. 우리 어버이는 아들을 보려고 찾아오느라 이날 100만 원 가까이 썼다더라. 길삯도 길삯이지만, 온통 바가지투성이였다. “넌 왜 휴가도 안 나오냐? 전화는 왜 안 하고?”“아버지 어머니, 여기서는 글월도 못 써요. 전화도 못 해요. 그나마 지오피에서 나왔으니 얼굴을 보는 외박이라도 하는데, 곧 훈련을 뛰니, 여기서 나갈 때까지는 아무 연락도 못 합니다.” “요새 편지도 전화도 못 하는 군대가 어딨냐?” “여기 와 보셨잖아요? 여기가 그런 데예요. 와서 보시니 왜 아무것도 못 하는 줄 아시겠지요?” “그러면 우리더러 찾아오라고 해서 외박이라도 나오지 그랬냐?” “에휴, 여기 바가지 오늘 신물나게 보셨지요? 이런 바가지를 뻔히 아는데 어떻게 오시라고 불러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바가지일 줄은 몰랐지.” “그러나 아들은 멀쩡히 살아서 돌아갈 테니, 걱정 마셔요.” 내가 깃들던 싸움터(군대)는 내가 이곳을 떠나고 석 달 뒤에 닫았다고 들었다. 너무 외지고 고단하고 말썽이 잦은 터라 닫기로 했고, 내 뒷내기는 뿔뿔이 여기저기로 흩어졌단다. 우리나라 마지막 뻬치카(갈탄 난로)가 있던 곳이다. 2022년 11월 25일에 강원 화천군 ‘이기자 부대’가 뿔뿔이 흩어지고 난 뒷이야기를 들었다. 화천군 밥집·길손집 지기는 파리가 날리고 괴괴하다고 하소연인데, 사람들 덧글은 하나같이 “추운 겨울에 따스한 이야기”라면서 그들을 나무란다. 그래, 이 나라는 싸움터(군대)를 낀 마을마다 허벌나게 바가지를 씌웠잖은가? ‘돈도 이름도 힘도 없어 강원도 멧골짝 싸움터로 끌려간 사내’를 벗겨먹은 그들이 무엇이 불쌍할까? 아니, 불쌍하지. 착한 마음도 참된 마음도 없이 오직 돈바라기 짓을 하던 그들은 삶·살림·사랑하고 등진 나날이었으니 불쌍할 뿐이다. 밖에서 500원에 파는 새우깡을 5000원에 팔아먹은 그들이니.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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