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살아요
무레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더블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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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1.24.

인문책시렁 256


《이걸로 살아요》

 무레 요코

 이지수 옮김

 더블북

 2022.4.20.



  《이걸로 살아요》(무레 요코/이지수 옮김, 더블북, 2022)를 읽다가 지우개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글붓이나 그림붓을 쓴다면 지우개를 늘 곁에 두는데, ‘고무 지우개’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온통 ‘플라스틱 지우개’예요. 우리나라에는 ‘고무신’이 있습니다만, 이제는 이름만 고무신일 뿐 막상 ‘플라스틱신’이에요.


  사람들이 입는 옷은 실로 짭니다만, 모시·삼·솜·누에실·양털로 얻은 실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짜는 옷이 넘쳐요. 값싸게 사고파는 지우개나 신이나 옷은 모조리 플라스틱입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풀꽃나무한테서 얻은 밑감으로 지은 살림은 모두한테 이바지합니다. 이와 달리 플라스틱으로 뽑아내어 값싸게 사고팔거나 다루는 살림은 모두한테 쓰레기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살림살이는 나무입니다. 글붓도 종이도 나무이고, 글판(키보드)하고 다람이(마우스)도 나무예요. 나무 글판하고 나무 다람이를 찾아내기까지 만만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나무 글판이며 나무 다람이를 짓지 않더군요. 돈이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일 텐데, 가게에서 비닐자루를 쓰지 말라 하는 일 못지않게, 셈틀 껍데기·글판·다람이를 나무로 바꾸도록 나라에서 나서야지 싶어요. 손전화 뼈대도 나무로 짤 수 있어요. 길을 차지한 부릉이(자동차)도 속살림은 나무로 짤 만합니다.


  옷칸이며 잠자리를 나무로 짜면 모두한테 이바지합니다. 나무로 짠 살림은 손길을 탈수록 빛이 날 뿐 아니라 훨씬 오래 씁니다. 나무로 짠 살림이나 세간이 오래되어 닳거나 낡았다면 땔감으로 삼지요. 그러나 값싼 플라스틱은 모두 쓰레기일 뿐 아니라, 사람한테도 들숲바다한테도 나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스스로 바꿀까요? 나라가 앞장서야 할 일이 틀림없이 있기는 하지만, 나라가 등지거나 팔짱을 끼더라도, 저마다 보금자리에서 하나씩 바꿀 노릇입니다. 풀꽃나무를 곁에 두면서 시골살이로 거듭나고, 손전화가 아닌 종이책을 펴고, 부릉부릉 몰기보다는 두 다리로 걷고, 아이들을 배움터에 몰아넣기보다는 보금자리에서 함께 살림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지을 노릇이에요.


  하나를 더 헤아린다면, 밥옷집뿐 아니라, 말글살이를 숲빛으로 여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트로 지우개가 필요하다”가 아닌 “지우개를 함께 쓴다”로 가다듬을 말입니다. ‘에코백’이 아닌 ‘천바구니’를 쓸 일입니다. “이걸로 살아요”가 아닌 “이렇게 살아요”나 “이처럼 살아요” 하고 말하는 눈빛으로 가꾸어 갈 수 있기를 바라요.


ㅅㄴㄹ


연필을 쓰면 세트로 지우개가 필요하다. 여태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쭉 같은 제품을 썼는데, 그것이 플라스틱 지우개이고 이 역시 작아져서 새것을 살 시기가 되었기에 전통적인 고무 지우개를 동네 문방구에서 찾아봤더니 플라스틱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자 일본 제품은 한 개, 스페인 제품은 여러 개가 나왔다. (26쪽)


요즘은 에코백을 들고 다녀야 한다거나 포장을 간소화해야 한다는 의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높아져서, 물건을 살 때 “그냥 주세요”라고 말하기 쉬워졌다. (46쪽)


분명 책은 책장에서 넘쳐났지만 딱히 그런 터무니없이 비싼 물건을 사지 않아도 지극히 평범한 책장으로 충분했다. 허세가 있는 엄마는 선생님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겠지. (120쪽)


#むれようこ #群ようこ #これで暮らす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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