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숲노래 우리말

나는 말꽃이다 110 사그락



  먹물을 묻히는 붓을 쥐면 스윽스윽 부드러이 번지는 소리가 싱그러이 감도는 이야기로 태어납니다. 까만 돌가루를 길게 뭉쳐 나무로 품은 붓을 쥐면 사각사각 사그락사그락 가볍게 퍼지는 소리가 푸르게 맴도는 이야기로 피어납니다. 붓은 나무를 바탕으로 털빛이나 돌빛을 품습니다. 종이는 나무가 우거진 숲빛을 푸르게 안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 한 줄에는 여러 빛살이 어우러집니다. 때로는 서둘러야 해서 후다닥 쓰면서 씽씽 센바람을 맞이합니다. 때로는 느긋하면서 조용히 쓰면서 산들바람이며 봄바람을 맞아들입니다. 스윽스윽 글소리로 하루를 다독입니다. 사각사각 사그락사그락 글소리로 오늘을 달랩니다. 호미로 홈을 파듯 톡톡 쪼는 손길에서는 살림을 여는 소리가 구슬땀에 맺힌 즐거운 이야기로 돋아납니다. 도마를 놓고 부엌칼을 통통통 놀리노라면 밥차림으로 잇는 가벼운 소리가 신나는 노랫가락으로 거듭나면서 넉넉한 이야기로 자라납니다. 우리말은 소리말(의성어)하고 몸짓말(의태어)이 수두룩합니다. 낱말풀이를 할 적에 소리말하고 몸짓말은 쉽지도 어렵지도 않으나, 어쩐지 즐겁습니다. 글을 쓰고 말을 나눌 적에 우리말빛을 살리는 소리말하고 몸짓말을 푸짐히 엮으면 한결 멋스러우면서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