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동심이 당신을 구원할지도
임정희 지음 / 남해의봄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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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0.20.

인문책시렁 243


《어쩌면 동심이 당신을 구원할지도》

 임정희

 남해의봄날

 2021.3.30.



  《어쩌면 동심이 당신을 구원할지도》(임정희, 남해의봄날, 2021)를 읽었습니다. 읽은 지 한참 지나도록 자리맡에 놓고서 어떻게 느낌글을 쓸까 하고 돌아보았습니다. 먼저 책이름부터 살피자면, 멋을 부렸습니다. “동심이 당신을 구원할”은 멋부린 말이에요. 예부터 어버이 자리에 선 수수한 사람들은 이 세 한자말 ‘동심·당신·구원’을 몰라도 아이를 넉넉히 사랑하면서 스스로 돌볼 줄 알았어요.


  어쩌면이 아니라 참말로 “아이가 어버이를 돌봅니다” 하고 여쭙겠습니다. 아이는 어른하고 어버이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어른하고 어버이는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어른·어버이는 아이를 못 가르쳐요. 어른·어버이는 아이한테서 배울 뿐입니다. 아이는 어른·어버이한테 ‘살림을 짓는 길을 스스로 배우도록 가르칩’니다. 어른·어버이는 아이한테서 ‘스스로 사랑으로 삶을 짓으며 노래하고 노는 길을 배웁’니다.


  이를테면 40쪽에 놀이터하고 비하고 슈룹(우산) 이야기가 나와요. 아이는 어버이가 여느 때에 늘 하던 버릇을 놀이터에 맞물려서 이야기합니다. 이때에 여느 어른은 아이를 대견하게 볼는지 모릅니다만, ‘비’가 무슨 구실을 하는지 아이한테 제대로 들려주지 않았구나 하고 느낄 만해요.


  비가 오기에 숲이 푸르지요. 비가 오기에 냇물이 맑고, 바다가 깨끗합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냇물이 마를 뿐 아니라 숲이 죽고, 바다가 썩어요. 그런데 빗물은 바닷물입니다. 바닷물이 아지랑이로 피어올라 구름을 이루고, 이 구름이 뭍으로 찾아들어 비를 뿌리니 온숨결을 살리는 물빛입니다. 우리 옛말에 ‘슈룹’이 있습니다만, 예부터 수수한 사람들은 슈룹으로 비를 안 가렸어요. 비를 그저 맞았고, 아이들은 비놀이를 누렸습니다. 신나게 비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앓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쌀밥을 먹기에 조금은 튼튼합니다. 나락(쌀)은 논에서 빗물을 머금거든요. 논지기는 비가 오면 논물을 빼고 빗물을 받아들여요. 빗물을 머금은 쌀밥을 안 먹는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몸앓이를 끔찍하게 하면서 죽음길로 가리라 느낍니다. 꼭짓물(수돗물)은 사람을 못 살립니다. 오직 빗물이 사람을 살립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하고 어릴 적부터 비놀이를 누렸고, 서울(도시)로 나갈 적에도 가랑비는 그냥 맞고, 함박비라면 슈룹을 쓰기는 합니다만, 시골에서는 함박비여도 슈룹을 안 써요. 품에 종이책이 있으면 슈룹을 씁니다.


  어린빛(동심)이 아름다운 줄 천천히 배우는 어버이 이야기를 담았기에 《어쩌면 동심이 당신을 구원할지도》는 반갑습니다. 그러나 어깨에 힘을 빼고서 마음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글멋을 안 부렸다면 나았으리라 생각해요. ‘사회의식·시사상식’이 아니라, ‘숲빛으로 스스로 살림을 짓는 슬기로운 사랑’ 하나로만 아이랑 하루를 짓고 글줄을 여미면 넉넉합니다.


  거친말을 쓰면 거친말을 쓰는 사람부터 스스로 마음을 갉아먹어 죽음길로 갑니다. 그래서 싸움터(군대)를 하루빨리 없애야 합니다. 싸움터에 길든 사내들은 거친말에 길들고, 싸움터처럼 겨룸판에 싸움판인 서울(도시)하고 배움터(학교)는 순이돌이가 모두 스스로 마음을 갉아먹는 죽음길로 내몰아요.


ㅅㄴㄹ


놀이터를 가만히 쳐다보던 딸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놀이터에도 우산을 씌워 줘야겠어.” (40쪽)


“엄마, 엄마가 나를 낳았잖아. 우리는 연결돼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엄마의 마음을 듣는 게 아닐까?” (53쪽)


남편의 입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심이 흘러나왔다. “이젠 나도 말조심해야겠어.”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159쪽)


늦게나마 사과할 기회를 준 딸에게 고마우면서도 내심 당돌한 녀석 같으니라고 싶었다. (17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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