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음노래
주시경
너희는 참 재미있어. 세종 임금이 ‘훈민정음’이란 글을 지었다지만, 정작 세종 임금을 비롯해서 글바치(지식인)·벼슬아치는 ‘훈민정음’을 안 썼고, 조선 500해 내내 다들 한문만 썼지. ‘글을 지었다’는데, 안 썼다면 참말로 ‘글을 지은 이’가 맞니? 너희는 ‘국한문’이란 어정쩡한 낱말을 쓰는데 ‘국·한문’에서 ‘국문(國文)’은 ‘일본글’이잖아? ‘국어 = 일본말’이지. 뻔히 보이는 이 얼거리를 왜 그대로 안 보고 안 생각하니? 임금·글바치·벼슬아치는 한문·중국말을 썼지만,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돌보며 손수 밥·옷·집을 짓던 숲사람·시골사람·흙사람은 ‘사투리(삶말)’를 스스로 지어서 썼어. 일본이 너희 나라로 쳐들어왔을 적에 너희는 ‘너희 글’이 없었고 ‘너희 말’은 있었어. 일본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쓰는 말’을 없애려고 ‘일본말·일본 한자말’을 너희 나라에 심으려 했지. 이때 주시경은 “말을 지키려면 말을 담는 글이 있어야 한다”고 깨달았고, 너희 나라에서 ‘글을 모르는 사람이 쓰는 말’을 담아낼 글은 한문이 아닌 ‘훈민정음’이어야 하는 줄 알아보았고, ‘중국말을 담는 소리’인 ‘훈민정음’을 ‘숲사람·시골사람·흙사람·들사람(백성·민중·평민)이 하는 말’을 담는 글로 삼으려고 ‘한글’을 처음으로 세우고 밑틀을 다져서 ‘한말을 한글로 담는 길’을 마련했어. 그런데 너희는 세종 임금만 말하고 기리더구나. ‘한글’을 세워서 너희가 “생각하고 마음을 그리는 살림길을 말로 담아내도록 연 사람”은 주시경인데, 너희는 왜 주시경을 잊고 잃니? 누가 주시경을 밀어없애고 세종 임금만 우러르면서 참모습을 감추니? 2022.10.8.흙.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