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이쁨 (2022.5.1.)

― 포항 〈달팽이책방〉



  혼자 살림을 꾸리던 지난날에는 보금자리를 ‘이 책집으로도 저 책집으로도 찾아가기에 즐거운 곳’으로 살폈습니다. 처음 제금나던 1995년 봄에는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 일을 하느라 서울 이문동에 깃들었고, 펴냄터(출판사)로 일자리를 옮기고서는 서울 종로구 평동 나무집(일본 적산가옥) 한켠을 얻었어요. 서울 곳곳 책집을 다니자면 서울 한복판에 삯집을 얻어야겠더군요. 요새는 몽땅 잿빛집(아파트)으로 바뀐 평동이지만, 예전에는 가난살림을 하는 사람들이 눅은 삯으로 지낼 오래되고 작은 집이 꽤 있었습니다.


  곁님을 만나서 아이를 낳아 시골로 삶터를 옮긴 뒤로는 책집마실을 확 줄였고, 보금자리 둘레를 나무로 차곡차곡 덮고, 온갖 풀꽃을 맞아들입니다. 새도 풀벌레도 개구리도 벌나비도 한집을 이루면서 지냅니다.


  제가 포항에 살림집을 얻는다면 아마 〈달팽이책방〉을 걸어서 오갈 만한 데를 살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에서는 숲을 품고 살아가면서 푸르게 숨쉰다면, 큰고장에서는 책을 곁에 두고 살아가면서 푸르게 노래할 만하다고 느껴요.


  2022년 5월 한 달 동안 〈달팽이책방〉에서 ‘노래그림잔치’를 엽니다. 큰고장 이웃님한테 들려주는 노래(동시)를 숲노래 씨가 쓰고, 사름벼리·산들보라 두 사람이 그림을 맡아 주어 ‘노래그림(시화)’을 일굽니다.


  저희는 땅을 일구어 푸성귀를 얻어서 큰고장 이웃하고 나눌 만한 살림살이는 아닙니다. 시골에서 곁에 두는 들숲바다랑 해바람비가 사람하고 어떻게 어우러지는 사이인가 하고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이 살림꽃을 글그림으로 옮겨서 여러 이웃님하고 나누는 하루예요.


  포항 마을책집 〈달팽이책방〉에 깃들면, 이곳 책시렁에 꽂힌 책이 얼마나 이쁨받는지 한눈에 느낄 수 있습니다. 책집지기한테서 이쁨받고, 마을책손한테서 이쁨받고, 저처럼 먼길을 마실하는 먼손한테서 이쁨받습니다.


  나라에서 꾀하는 틀배움(제도권교육)은 똑같은 책으로 똑같은 부스러기를 밀어넣는 길입니다. 마을마다 조촐히 가꾸는 작은책집은 지기·책손이 마을빛을 돌보면서 마음빛을 북돋우려는 징검다리로 삼을 들풀 같은 책을 토닥이려는 길이에요.


  많이 팔리거나 큰 펴냄터에서 쏟아내는 책이 나쁠 일은 없습니다만, 이제는 우리 스스로 곰곰이 생각할 때라고 느껴요. 새뜸(신문·방송·잡지)에서는 어떤 펴냄터에서 내놓는 어떤 책을 널리 알릴까요? 시골에서 숲을 품고 아이를 사랑으로 보살피는 숨결을 담아낸 책을 기꺼이 알리는 글바치(기자·평론가)는 몇쯤 있을까요?


《한자나무 2》(랴오원하오 글/김락준 옮김, 교유서가, 2021.9.3.)

《고문서 반납 여행》(아미노 요시히코/김시덕 옮김, 글항아리, 2018.3.14.)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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