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순이돌이 (2022.5.2.)

― 대구 〈럼피우스의 책장〉



  아침볕이 뜨거운 대구 골목을 걸어서 〈럼피우스의 책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해가 알맞게 들고 호젓한 자리를 느긋이 누리려는데, 이 골목으로 부릉이(자동차)를 모는 아저씨가 미닫이를 열고서 “이 새끼들아 비켜!” 하고 외칩니다.


  아이도 어른도 길을 한 줄로 걸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즐겁게 봄볕을 누리는 골목길이니, 두엇이 나란히 서서 함박웃음으로 이야기꽃입니다. 조용조용 느긋한 골목에 난데없이 부릉부릉하더니 거친말로 윽박지르는 저 사내는, 대구 푸름이한테 어떤 씨앗을 심었을까요?


  크게 부릉거리며 가로지르는 저 사내는 왜 큰길 아닌 골목길로 굳이 비집고 들어와서 사납게 막말을 쏟아부어야 했을까요. 대구뿐 아니라 고흥도 매한가지요, 서울도 광주도 똑같습니다. 부릉이에 앉아 손잡이를 쥔 숱한 사람(순이돌이 모두)들은 어린이나 푸름이가 느긋이 걷는 골목길에서 도무지 안 기다립니다. 게다가 이 쇳덩이를 거님길에 함부로 세우지요.


  이름은 ‘어른’이되 어른스럽지 않은 늙은이(기성세대)가 보이는 볼꼴사나운 짓을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물려받는다고 느낍니다. 어떤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이처럼 볼썽사나운 늙은짓하고 등지면서 부릉종이(운전면허증)를 아예 안 따고 걷습니다.


  마을책집 〈럼피우스의 책장〉은 바바라 쿠니 님이 남긴 《미스 럼피우스》에 나오는 ‘럼피우스 어린이·젊은이·아줌마·할머니’ 삶에서 딴 이름입니다. 둘레에서 저한테 “숲노래 씨가 아름책(최고 명작) 하나를 얘기(추천)한다면?” 하고 물으면 “하나만 꼽으라는 말씀은 책을 읽지 말라는 얘기이고요, 《생쥐와 고래》에 《미스 럼피우스》에 《펠레의 새 옷》에 《꼬마 도깨비 오니타》에 《작은 새가 좋아요》 같은 그림책 다섯을 곁에 두고서 즈믄벌(1000 번)쯤 되읽었으면, 다른 책을 찾아서 읽을 만합니다.” 하고 들려주곤 합니다.


  책은 더 많이 읽어야 할 까닭이 없고, 글책만 높이 사야 하지 않습니다. 그림책 말고 어른이 읽을 책을 꼽아 달라고 자꾸 조르면 “만화책을 보셔요. 《불새》랑 《불랙잭》이랑 《우주소년 아톰》을, 《나츠코의 술》이랑 《우리 마을 이야기》를, 《이누야샤》랑 《은빛 숟가락》을, 《도토리의 집》과 《머나먼 갑자원》과 《천상의 현》을, 《맛의 달인》과 《에어리어 88》과 《권법소년》(후지와라 요시히데)을 온벌(100 번)쯤 되읽었으면, 그때 다른 책을 읽으셔요.” 하고 속삭여요.


  숲빛이기에 순이(여성)입니다. 동무하며 돌보기에 돌이(남성)입니다.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짓는다면 종이책이 없어도 누구나 아름답고 사랑입니다.


ㅅㄴㄹ


《에코의 초상》(김행숙, 문학과지성사, 2014.8.18.첫/2021.10.6.9벌)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박우란, 유노라이프, 2020.7.20.첫/2021.12.6.19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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