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 2022.7.10.

오늘말. 잿터


철없던 아이로 자라던 어린날, 왜 우리 고장에는 높은집이 없나 싶어 서운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사는 서울에 가노라면 으리으리하게 커다란 집이며 하늘을 찌를 듯한 높집이 줄지어요. 서울사람은 서울 아닌 곳을 보면 으레 “여기는 높다란 집도 없으니 발돋움이 더디군.” 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철없는 아이는 천천히 자라며 우람한 잿터란 사람살이하고 동떨어진 잿빛인 뿐인 줄 하나하나 알아차립니다. 풀꽃이 돋고 나무가 자라면서 새가 내려앉고 개구리랑 뱀도 어우러지면서 바람에 날개를 나부끼듯 날며 곱게 춤추는 나비가 함께 있기에 비로소 ‘집’다운 줄 느껴요. 서울에 빼곡한 잿빛집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숲살림을 받아들여 가꾼 터전이 아니기에, 늘 다시짓기(재개발)에 얽매입니다. 잿빛터를 허물면 모두 쓰레기가 될 테지요. 한때 이름을 드날리는 높다란 꽃얼굴이라 하더라도, 머잖아 쓰레기터를 그득그득 채울 잿더미입니다. 우리 삶은 이름꽃일 수 있을까요. 서로 날개이름이 되어 반짝일 수 있을까요. 한여름에 얼음밥을 나누면서 꽃낯으로 만날 수 있는가요. 이름높기보다는 아름답게 노래하는 이웃으로 빛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높집·높은집·집·잿빛·잿빛집·잿집·잿터·잿빛터 ← 빌딩


얼음·얼음밥·얼음고물·얼음보숭이 ← 아이스크림


꽃낯·꽃얼굴·꽃이름·날개이름·나래이름·아름이름·이름나다·이름높다·이름있다·이름값·이름꽃·이름빛·이름님·이름꾼·손꼽다·알아주다·첫손·어깨띠·팔띠·드날리다·휘날리다·나부끼다·떨치다·빛나다·반짝이다·번쩍이다 ← 유명(有名) 유명세, 유명인, 유명인사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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