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골목집 하고 잿빛집 사이 (2022.6.21.)
― 인천 〈나비날다〉
‘골목집’은 골목사람 스스로 골목을 돌보고 가꾸는 삶터입니다. ‘잿빛집(아파트)’은 그냥 목돈을 모아서 사들이는 돈붙이(재산)입니다. 나라에서 자꾸 골목집을 허물어 잿빛집으로 갈아치우려고 할 적에는, 사람들이 스스로 집(보금자리)·마을을 가꾸고 일구고 돌보고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빼앗는다고 할 만합니다. 골목사람으로 지낼 적에는 저마다 스스로 골목을 쓸고 정갈히 다스리면서, 나무도 심고 꽃밭에 텃밭을 품지요. 이 골목은 어른으로서는 만남터·쉼터·일터요, 아이로서는 놀이터입니다.
골목을 잃은 아이들은 놀이터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봐요. 노는 아이를 이제 찾을 길이 없습니다. 서울(도시)뿐 아니라 시골도 노는 아이가 없어요. 빈터가 없거든요. 골목마다 부릉이(자동차)가 끔찍하게 들어찼고, 시골 풀밭이나 빈터에는 농약병이 뒹굴거나 잿더미(시멘트)가 뒤덮어요.
골목마을을 밀어붙이는 나라(정부)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살림짓고 스스로 사랑하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미워하거나 싫어하거나 꺼린다고 하겠습니다.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숨죽이거나 고개숙이면서 따라오라는 뜻으로 골목마을을 밀어붙여서 없애려는 삽날질을 끝없이 일삼아요.
잿빛집(아파트)에서 마음껏 노는 어린이가 있나요?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짓나요? 노는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노래를 부르나요? 예부터 골목마을에서는 ‘깍두기’가 있습니다. 힘이 적거나 몸이 여린 아이는 ‘깍두기’란 이름으로 모든 자리에 살며시 받아들여서 마음껏 놀거나 쉬엄쉬엄 어울리도록 마음을 기울였어요.
오늘날 잿빛마을(아파트 신도시)은 울타리로 둘러싸고 모래밭조차 없는 플라스틱판입니다. 게다가 이런 조그만 ‘울타리 놀이터(놀이기구 몇 있는 곳)’에조차 느긋이 머물 수 있는 아이는 없다시피 해요.
온나라 아이들은 어린배움터(초등학교)를 다닐 적부터 배움수렁(대학입시지옥)에 빠집니다. 놀면 안 되는 아이가 되고 말아요. 놀지 못하니 동무를 못 사귀고, 동무를 못 사귀니 어깨동무를 모르고, 어깨동무를 모르면서 책만 달달 외우니 ‘지식·이론’은 가득하지만, 정작 사랑스러운 손길은 하나도 모른 채, 나이만 스물 서른 마흔이라는 큰몸뚱이로 자라기만 합니다. 오늘날 적잖은 이들이 응큼질(성추행)이나 막질(폭력)을 하는 바탕에는, 골목을 짓밟아 놀이를 빼앗은 ‘서울나라(도시문명사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읽거나 쓰는 책에는 이런 얘기를 얼마나 담나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