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6.20.

아무튼, 내멋대로 10 긴머리



  1975년에 태어나 1982년에 아직 ‘국민학교’란 이름인 어린배움터에 들어간 또래는 늘 얻어맞고 막말을 듣고 짐더미(숙제)에 억눌린 채 집에서는 숱한 심부름에 허덕이면서 살았다. 우리 언니도 그러했고, 언니네 언니도 매한가지였다. 1975년 또래는 1993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이해에는 ‘수능(수학능력시험)’을 9월하고 11월에 두 판 치렀다. 새로 바꾼 셈겨룸(시험)이 해볼 만한가를 따지려고 두 판을 치렀으니, 이 또래는 쥐(실험쥐)인 셈이다. 숲노래 씨가 다닌 푸른배움터(고등학교)는 3학년이 500 남짓이었는데, 이 가운데 둘만 ‘수능 2 + 본고사 + 면접’을 치렀다. 둘을 빼고는 11월에 치른 두 판째 셈겨룸으로 배움수렁(입시지옥)이 끝이었다. 그런데 배움터 길잡이는 두 판째 셈겨룸을 마친 이튿날 갑작스레 ‘머리치기(두발검사)’를 하더라. 배움칸(교실) 앞뒤를 잠그고서 자를 들이밀어 1mm만 넘으면 머리통에 구멍을 내시더군. 사랑도 살림도 삶도 가르칠 생각이 터럭만큼도 없던 지난날 우리 민낯이다. 위에서 힘으로 누르거나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라는 굴레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나는 2mm가 더 길다면서 머리에 구멍이 났다. 다른 동무는 이날 곧장 머리집(이발소)에 가서 구멍난 티가 안 나도록 하려고 머리를 거의 박박 밀더라. 난 구멍난 머리인 채 배움옷(교복)차림으로 끝까지 버티었다. 보다 못한 배움터 길잡이가 “야, 넌 머리 깎을 돈이 없냐? 보기 흉하다. 내가 돈을 줄 테니 머리 좀 깎아라.” 하기에 “보기 흉하게 머리에 구멍낸 분이 누구시죠? 보기 흉한 줄 알면, 이런 보기 흉한 짓을 처음부터 말아야지요.” 하고 나즈막하게 읊으며 노려보았다. 머리에 구멍까지 낸 분들이 “요놈 말하는 싸가지 봐라!” 하고 손찌검을 하려고 들면 곧장 걸상을 집어들어 먼저 후려칠 생각까지 했는데, 숲노래 씨가 대든 말에 몽둥이를 들거나 손찌검을 한 분은 고맙게도 없었다. 1994년 2월 즈음에 이르자 구멍난 데가 조금은 찼고, 이제 어깨에 살짝 닿는 머리카락을 손질할까 하고 생각했는데, 문득 “아, 사내로서 머리카락을 언제 길러 보나? 어쩌면 딱 이때만 머리카락을 기른 채 보낼 수 있는지 몰라.” 싶어서 머리손질을 안 했다. 찰랑이는 머리카락을 그냥 두었다. 이러던 어느 날 인천 시내버스를 타다가 “뭐여? 남자가 불량스럽게 왜 머리가 길어? 우리 버스엔 불량학생 안 태워!” 하면서 앞문을 쾅 닫아 그만 쫓겨났다. 이른바 ‘승차거부’이다. 떠밀려 쫓겨나서 길바닥에 주춤주춤 섰다. 한동안 멍했다. “아니, 내가 무슨 마틴 루터 킹 목사야? 아니아니, 1994년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웬 버스 승차거부? 무슨 일이지?” 더 생각해 보았다. “여학생은 다 긴머리인데, 그럼 여자는 몽땅 불량학생이란 뜻이야? 구멍난 자리를 덮을 만큼 기르느라 어깨에 살짝 닿을 만한 머리카락인데, 이 머리카락이 길다고? 무엇보다 겉모습만으로 누가 불량하고 우량하고를 어떻게 갈라? 말이 돼?” 이날부터 버스를 안 타기로 했다. 그냥 걸었다. 여느때에도 한 시간 길은 으레 걸었으니, 두 시간 길도 기꺼이 걷기로 했다. 가만 보니 “긴머리 사내”를 보는 둘레 눈길이 따가웠다. “넌 왜 불량하게 머리를 길러?”라든지 “네가 락가수라도 돼?”라든지 “70년대 장발족도 아니고, 뭐 하니?” 같은 말을 날마다 뻔질나게 들었다. 나는 중·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마을 어린이를 가르쳐서(과외) 곁돈(용돈)을 벌어 책값으로 쓰곤 했는데, ‘긴머리’가 되고 보니 모든 가르침(과외) 자리를 잘렸다. 찻집도 술집도 긴머리인 사내는 곁일꾼으로 안 받겠더란다. 골프공을 줍는 곳에서조차 안 받더라. 1994년 한 해는 곁일자리가 하나도 없는 채 빠듯하게 열린배움터(대학교)를 다녔다. 이듬해 1995년은 열린배움터가 너무 엉터리라고 느껴 그만두기(자퇴)로 마음을 먹었고, 마지막이라 여기며 신문사지국에 갔더니 “엥? 넌 왜 머리가 길어? 이런 불량한 젊은이가 새벽마다 신문을 돌릴 수 있겠어? 뭐, 새벽에 신문을 돌리면 볼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괜찮다만, 하루라도 빠지면 안 돼!” 하면서 받아주었다.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 자리를 얻은 뒤에 대학도서관 곁일자리를 얻었고, 대학구내서점 곁일자리까지 얻었다. ‘신문배달부로 일하는 젊은이라면 긴머리여도 믿을 수 있다’고 하더라. 숲노래 씨는 긴머리로 살 생각이 터럭만큼도 없었지만, 마침종이(졸업장) 없이 일하려 생각했고, 겉모습으로 사람을 따지거나 재는 눈길을 고분고분 따를 마음이 없었기에, 1993년 11월 그날, 머리치기롤 겪으며 구멍난 날부터 머리카락이 마음껏 자라도록 둔다. 우리는 긴머리 대머리 짧은머리가 아닌 속마음 속사랑 속꿈을 바라보고 나눌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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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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