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기운과 힘 (2022.4.18.)

― 서울 〈새고서림〉



  새벽에 배웅을 받으며 서울길에 나섭니다. 이제 4월이라고들 하지만, 날씨는 달종이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날씨는 하늘·풀꽃나무·흙·해바람비를 헤아리면서 읽습니다. 진작부터 민소매에 깡동바지(또는 깡동치마)를 입습니다. “춥지도 않나 봐.” 하고 옆에서 내뱉는 분들이 있어 “덥지도 않나 봐.” 하고 맞받이를 할까 하다가 안 쳐다보고 지나갑니다. 둘레에서 읊는 말은 옆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이 아닌, 그분 스스로 근심걱정에 쌓인 삶을 고스란히 퍼뜨리려는 씨앗입니다.


  시골에서 살며 하늘읽기를 하노라면, 전남 고흥은 3월 한복판부터 낮이 살짝 덥고 4월이면 이미 후끈합니다. 새벽하고 밤은 서늘하지요. 밤낮이 확 벌어집니다. 봄맞이꽃은 서늘한 밤하고 뜨거운 낮을 씩씩하게 살아내는 숨결이에요.


  시외버스에서 내려 전철을 갈아탑니다. 마을길을 걸어 〈새고서림〉 앞에 닿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왔기에, 삼십 분 남짓 해바라기를 하며 하루쓰기를 합니다. 겨울에도 여름에도 봄가을에도 늘 해받이에 섭니다. “왜 그늘받이에 안 서시우?” 하고 묻는 분한테 “왜 해를 안 먹나요?” 하고 되묻습니다. 풀꽃나무는 해바람비를 머금기에 푸르고 싱그러워요. 사람도 해바람비를 듬뿍 머금을 적에 싱그러이 사랑을 그리고 해맑게 꿈을 품으며 즐겁게 살림을 짓는다고 느낍니다.


  누가 심어야 자라는 들꽃이 아닙니다. 누가 심지 않아도 크는 나무입니다. 들꽃하고 나무는 새를 벗삼고 벌레를 동무삼고 바람을 이웃삼아 이 땅에 드리워요. 책읽기도 매한가지입니다. 곁에서 누가 소리를 내어 읽어 주더라도, 우리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생각을 지을 적에 비로소 책빛을 받아들인다고 느낍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생각을 길어올리기에 찬찬히 끌어올리면서 기르는 빛살이 ‘기운’이라고 느껴요. 몸으로 움직여서 삶을 누리고 싶어서 확 일으키는 빛살이라면 ‘힘’이고요. 우리말 ‘기운·힘’은 ‘마음·몸’을 다루는 빛이라는 대목에서 다르게 읽을 만합니다.


  책은 힘이 아닌 기운으로 읽습니다. 글은 힘이 아닌 기운으로 씁니다. 책은 힘이 아닌 기운으로 나누고, 글은 힘이 아닌 기운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로 자랍니다.


  마을책집 〈새고서림〉은 올해에 새터를 찾아야 할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처음 깃든 터에서 오래오래 책빛을 밝히는 길도 있고, 때로는 자리를 옮기면서 햇살 담은 책 한 자락을 나누는 길도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 우리 마음이 흐르는 눈빛에 따라서 책길을 열어요. 고요하면서 기쁜 눈빛으로 새벽고양이 책살림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요. 봄볕을 듬뿍 누리며 기운을 담았습니다. 이제 새길을 나섭니다.


《마스크》(키쿠치 칸 글/최수민 옮김, 새벽고양이, 2022.3.9.)

《유서의 일부로부터》(이토 노에 글/최수민 옮김, 새벽고양이, 2020.11.2.)

《나는 나를 여행한다》(나카노 시호코·이소나카 아키코·오치 코우키 글/나카노 시호코 옮김, 새벽고양이, 2021.10.20.)

《어른의 혼잣말》(최수민 글, 새벽고양이, 2017.11.17.)

《양천구와 성북구의 평행이론》(양천구 x·성북구 y 글, 희라 그림, 2021.9.15.)

《관악톡방 vol.1》(최수민 엮음, 새벽고양이, 2021.12.22.)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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