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한벌살림 (2022.5.23.)

― 서울 〈서적백화점〉



  지난 이태 동안 시외버스가 허벌나게 줄었습니다. 전남 고흥에서 서울을 오가는 시외버스는 하루 다섯에서 둘로 줄었어요. 한나절 남짓 달리는 먼길은 바깥일(출장)을 보는 사람이나 할매할배나 싸울아비(군인)가 흔히 탑니다. 어린이를 데리고 시외버스를 타는 손님을 예전에는 으레 보았으나 이제는 거의 못 봐요. 젊은 어버이는 웬만하면 부릉이를 장만하더군요.


  서울마실을 하며 버스·전철을 탈 적에도 어린 손님을 거의 못 봅니다. 나라에서 입가리개를 억지로 씌울 적에 누구보다 괴로운 어린이인 터라, 부릉이(자가용)에 태워 조금이나마 숨통을 틔우려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입가리개란 무엇일까요. 입을 가려 침이나 콧물이 둘레에 안 퍼지도록 막아 주기도 한다지만, ‘플라스틱덩이’일 텐데요. 게다가 입가리개 하나마다 갖은 빛깔을 입힌 두꺼운 비닐에 담으니, 비닐쓰레기가 엄청납니다. 가게에서 비닐자루를 못 쓰게 막으면서 왜 ‘입가리개를 비닐에 담아서 팔’았을까요? 찻집에서 한벌살림(일회용품)을 못 쓰게 한다면서 왜 ‘플라스틱덩이 입가리개와 비닐자루’를 놓고는 아직 입조차 벙긋하는 사람이 드물까요?


  플라스틱하고 비닐이 푸른별을 더럽히고 망가뜨리며 죽인다고 안다(지식)면, 왜 이 앎을 ‘플라스틱 입가리개와 비닐자루’로는 생각을 뻗지 않을까요?


  우리나라는 거의 꼴찌로 ‘길에서는 입가리개를 안 해도 된다’고 나라에서 밝혔습니다. 그러나 정작 여름을 앞둔 서울길이며 시골길 어디에서나 ‘오가는 사람이 한둘뿐’일 때조차 입가리개를 하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땡볕을 받으면 어떻게 되지요? 땡볕을 받는 ‘플라스틱 입가리개’를 내내 하며 지낸다면, 우리 코하고 입뿐 아니라 얼굴하고 몸은 어떠할까요?


  후끈한 햇볕을 느끼며 〈서적백화점〉 앞으로 걸어갑니다. 둘레에 배움터가 여럿인데, 길잡이도 아이들도 맨얼굴이 없습니다. 안 더울까를 떠나, 봄볕도 여름볕도 먹지 않는다면, 해랑 바람이랑 비를 우리 살갗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 몸이 버틸 수 있을는지 아리송합니다.


  그냥그냥 시키는 대로 입을 가렸다가 쓰레기통에 담으면 사라질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아닙니다. 어떤 책이든 마음을 슬기롭게 사랑으로 다스리면 삶빛으로 스미지만, 아무 책이나 손에 쥘 적에는 스스로 삶을 짓는 길하고 등집니다. 그림책은 왜 읽을까요? 곁배움책(참고서)은 푸름이한테 앞길을 밝히는 빛일까요?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닌, 사랑으로 밝게 드리우는 책을 찾는 손길이 늘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혼자 산다는 것》(메이 사튼/최승자 옮김, 까치, 1999.12.10.첫/2019.2.11.3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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