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어울길 (2022.4.7.)
― 전주 〈잘 익은 언어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닌 또래를 거의 못 만나고 살았습니다. 열린배움터(대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다가 펴냄터(출판사)로 옮겨 네 해 즈음 일할 적에 딱 두 사람 만났고, 그 뒤로 인천을 떠나 전남 고흥에 깃들고서 네 사람 만났습니다. 서른 해 사이에 ‘1975 토끼띠’를 이만큼만 보다니 ‘이 땅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싶으나, 이 가운데 한 사람이 전주 〈잘 익은 언어들〉 지기님입니다.
작은아이랑 전주에서 하룻밤 묵던 엊저녁에 ‘전주 청소년문화의 거리’를 조금 걸었습니다. 이름은 ‘청소년문화의 거리’라지만 옷집·밥집·술집·찻집만 그득해요. ‘문화’에 글도 그림도 빛꽃(사진)도 없습니다. 그러면 그곳은 ‘푸른놀이길’이나 ‘푸른놀이거리’로 이름을 바꾸어야지 싶어요. ‘놀이’는 안 나쁩니다. 어린이도 푸름이도 놀이터를 누릴 노릇입니다. 책을 덜 읽거나 덮고서 틈틈이 바람을 쐬고 별을 보고 멍하니 꽃바라기를 할 수 있으면 삶이 즐거워요.
이름을 이름답게 안 붙이면 자꾸 엇나갑니다. 한자말로 ‘문화’라 붙인들 삶이 낫지 않아요. 영어로 ‘그린’이라 붙인들 삶이 푸르지 않습니다. 높지도 낮지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삶인 만큼, 이 삶을 스스로 수수하게 바라보면서 품을 적에 비로소 슬기롭게 자라나며 철든 어른으로 나아간다고 느껴요.
다음달에 《퀘스천》이란 달책에 실을 이야기를 꾸리려고 〈잘 익은 언어들〉 지기님하고 도란도란 낮빛을 누리다가 ‘책어울길’이란 이름을 한참 헤아렸습니다. 마을책집하고 마을책숲하고 마을어린이집이 깃든 ‘거북바우로’를 조촐히 ‘책어울길’로 삼을 만합니다. 마침 전주는 2022년 5월에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을 처음으로 편다더군요. ‘국제’라 덧댄 이름이 아쉽습니다만, 굳이 ‘국제’로 안 하면 훨씬 나을 테지만, 더 조그맣게 ‘전주 그림책마당’이나 ‘전주 그림책어울빛’이나 ‘전주 그림책밭’ 같은 이름을 생각해 볼 만한데, 벼슬터(공공기관)에서 이러한 자리를 꾀하는 대목으로도 반갑습니다.
많이 읽은 사람이 더 읽는 길보다는, 안 읽은 사람이 읽도록 부추기는 길보다는, 먼저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가기를 바라요. 어린이부터 읽는 그림책입니다. 어린이부터 읽을 수 있으며 누구나 누리는 그림책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이웃나라 사람도 사랑할 그림책입니다. 어우러지는 길이고, 어깨동무하는 길이며, 어른스럽거나 어버이답게 빈차는 길이자, 어깨춤으로 함께 놀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길인 오늘입니다.
ㅅㄴㄹ
《해님우산, 비우산, 구름우산》(사토 마도카 글·히가시 치카라 그림/한귀숙 옮김, 키위북스, 2017.10.20.)
《케스―매와 소년》(베리 하인즈 글/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1998.8.20.)
《마지막 인디언》(디오도러 크로버 글/김문해 옮김, 학원출판공사, 1984.)
《바람과 물 3 도망치는 숲》(김희진 엮음, 여해와함께, 2021.12.20.)
《멋진 하나》(강기화 글·홍종훈 그림, 동시요, 2021.12.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