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을지로 (2022.1.21.)

― 서울 〈소요서가〉



  서울에서 ‘을지로’는 고구려사람 ‘을지문덕’을 딴 땅이름입니다. 옛사람 ‘을지’는 마땅히 한자 이름이 아닌 우리말 이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땅이름을 보면 ‘乙支’란 한자를 그냥 붙이고, 옛이름 ‘을지’를 오늘날 어떤 이름으로 새롭게 읽어서 새겨야 하는가를 풀어내지 못하거나 않습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손수 살림을 짓고 사랑을 아이한테 물려주던 수수한 시골사람이 스스로 지었습니다. 글이나 책이 아닌 삶으로 물려준 말입니다. 이런 우리말은 조선 무렵에 몹시 억눌렸고,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와 짓밟으면서 숨이 막혔는데, 1945년 뒤에는 남·북녘으로 갈린 틈바구니에 미국이 끼어들었고, 1950년부터 1987년까지 새로운 총칼나라(군사독재)였기에 그야말로 ‘삶말·살림말·사랑말’은 어깨는커녕 기지개조차 켠 적이 없습니다.


  여느 자리에서는 그냥 ‘인문책’이라 말합니다만, 이 ‘人文學’도 일본사람이 지은 한자말입니다. 굳이 일본을 미워할 까닭은 없되, 총칼찌꺼기(일본제국주의 잔재)는 이제라도 좀 씻거나 털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마음을 밝혀야지 싶습니다. 아무튼 저는 ‘삶책’이라고 말합니다.


  서울 을지로 삶책집 〈소요서가〉에 찾아갑니다. 작은아이는 삶책집으로 가는 길에 얼음이나 눈을 만날 적마다 바작바작 소리가 나도록 밟으면서 놉니다. “아버지도 밟아 보지요?” 하고 웃는 아이한테 “응, 마음껏 밟으셔요.” 하고 얘기합니다. 너희 아버지도 어릴 적에 얼음하고 눈을 엄청나게 밟으며 놀았단다. 그러고 보니 저도 어릴 적에 어머니한테 “어머니도 얼음 밟아 봐요! 재밌어요!” 했고, 우리 어머니는 저한테 “많이 밟아! 어머닌 어릴 적에 많이 밟아 봤어!” 했습니다.


  종로나 청계천이 아닌 을지로에 깃든 삶책집은 새삼스럽습니다. 곰곰이 보면 어느 곳이든 책집이 깃들기에 어울립니다. 숲은 숲대로, 시골은 시골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섬은 섬대로, 서울은 서울대로, 또 이 복닥거리는 가겟거리 한복판은 가겟거리 한복판대로 사람들 누구나 숨돌리면서 마음을 틔울 책집이 있을 만해요.


  스스로 삶을 짓는 사람은 스스로 사랑을 짓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짓기에 스스로 아이를 낳아 스스로 지은 삶에 따라 여민 말을 스스로 즐거이 물려줍니다. 예부터 어버이는 아이한테 “말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말을 물려주었”습니다. 아이는 어버이 삶말을 물려받아 스스로 새롭게 짓는 살림을 보태어 가다듬었고, 이 물줄기가 오늘로 잇습니다. 어제 태어난 책을 오늘 만나고, 오늘 읽는 책을 바탕으로 모레에 아이들한테 물려줄 이야기를 새롭게 엮습니다.


ㅅㄴㄹ


《역사의 천사》(브루노 아르파이아 글/정병선 옮김, 오월의봄, 2017.10.23.)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김엘리 글, 동녘, 2021.6.30.)

《철학과 물리학의 만남》(W.하이젠베르그 글/최종덕 옮김, 한겨레, 1985.3.10.첫/1988.11.5.8벌)

《있음에서 됨으로》(일리야 프리고전 글/이철수 옮김, 민음사, 1989.3.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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