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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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아침에 (2022.1.20.)

― 익산 〈그림책방 씨앗〉



  언제나 아이들한테 묻습니다. “같이 갈래?” 아이들 스스로 생각해서 말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안 갈래.” 하든 “갈래.” 하든 아이들 스스로 짓는 하루를 지켜봅니다. 한자말 ‘육아’를 우리말로는 ‘아이돌봄’으로 옮길 만한데, ‘돌보다’는 ‘돌아보다’를 줄인 낱말입니다. 돌아가듯 보는, 두루 보는 결이 ‘돌아보다·돌보다’예요. “아이를 돌보다 = 아이한테 뭘 시키거나 해주는 길이 아닌, 아이가 스스로 그리고 생각해서 짓는 소꿉살림을 사랑으로 지켜보기”라고 할 만해요.


  아이를 돌아보는 동안 어버이로서 어떻게 하루를 그리고 지어서 살림을 일굴 적에 즐거우면서 아름다운가 하고 읽어냅니다. 어버이란 “즐겁고 아름답게 살림짓는 자리”라고 느껴요. 즐겁고 아름답되 사랑으로 가기에 어버이예요.


  작은아이하고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섭니다. 읍내를 거쳐 순천으로 가고, 칙칙폭폭 갈아타고서 익산에서 내립니다. 버스하고 택시를 망설이다가 조금 걷자니 택시가 척 옆에 섭니다. 그래, 택시로 가자.


  아침에 일찍 〈그림책방 씨앗〉에 닿습니다. 책집은 아직 안 엽니다. 요즈음에는 느긋이 여신다는 얘기를 나중에 듣습니다. 미리 여쭙고 마실을 한다면 헛걸음을 안 할 테지만, 딱히 헛심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집을 둘러싼 마을이 아침빛을 어떻게 머금는가를 헤아렸고, 책집 곁에서 서성이며 다리를 쉽니다.


  새벽부터 아침 사이에 길에서 ‘태우다·잠깨비·코흘리개·텃씨’ 이렇게 노래꽃을 넉 자락 지었습니다. “산들보라 씨, 이 넷 가운데 씨앗지기님한테 어떤 노래꽃을 드릴까요?” “음, ‘코흘리개’?” 산들보라 씨가 뽑은 대로 노래꽃판을 책집 여닫이 손잡이에 슬그머니 꽂습니다. 이따가 책집을 열려 나오실 적에 즐겁게 맞이하면서 책집아이가 함께 누리고, 책집손님도 나란히 누리기를 바랍니다.


  이제 어찌할까 하고 생각하며 걷습니다. 해가 드는 자리를 골라서 걸으려는데, 골목에도 길가에도 부릉이가 넘칩니다. 거님길을 온통 가로막는 부릉이입니다. 부릉부릉 다니는 사람은 안 걸어다니기에 아무 데나 세울는지 몰라요. 아니, 부릉부릉 다닐 적에는 해도 바람도 비도 눈도 잊기 쉬우니 커다란 쇳덩이를 길가에 부리고서 잊겠지요.


  거님길에는 부릉이가 아닌 들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야지 싶습니다. 거님길은 골목을 이루고 마을살림이 빛나야지 싶어요. 이곳 마을아이도 저곳 마을동무도 마음껏 뛰고 달리고 소리치고 춤출 만한 골목일 적에 우리 삶터가 살아나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이를 헤아리지 않는 나라는 숲을 잊고 말아 죽음길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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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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