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집으로 (2021.10.3.)

― 부산 〈파도책방〉



  어제 대구에서 이야기꽃을 마치고서 고흥으로 어떻게 돌아갈까 하고 생각하다가 부산을 거치기로 했습니다. 부산·고흥 사이는 하루에 시외버스가 둘 있습니다. 몇 해 앞서까지는 넷이었다가 둘이 줄었습니다. 나라(정부)에서는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말라며 시외버스를 줄인다고 밝히는데, 일하며 움직이는 사람은 늘 움직입니다. 시외버스를 줄일 노릇이 아니라 오히려 늘려야 ‘틈새두기에 이바지’할 테지요. 더구나 시외버스를 줄이는 바람에 부릉이(자가용)를 장만하는 사람이 늘어나, 길이 더 막힙니다. 곰곰이 보면 나라에서는 부릉이를 더 팔려고 얕은꾀를 씁니다. ‘전기차 덧돈(보조금)’이 어마어마합니다. 뚜벅이(보행자)야말로 숲사랑(친환경)인데, 참 엉뚱한 나라길(국가정책)입니다.


  새벽에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오고, 지하철을 갈아타고서 보수동에 닿습니다. 이른아침에 책골목을 조용히 거닙니다. 부산시는 바닥돌을 바꾸고 껍데기를 꾸미는 데에만 돈을 썼습니다. 책이 왜 책인 줄 하나도 모르는 탓입니다. 겉을 번드레하게 꾸미거나 이름난 사람이 써야 책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겉을 잘 꾸며도 알맹이가 없거나 허술하면 종이뭉치입니다. 아무리 이름난 사람이 써도 줄거리를 베끼거나 훔치면 장삿속입니다.


  책은 속으로 읽습니다. 책은 마음으로 읽습니다. 책은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눈길을 가꾸려고 읽습니다. 책은 너랑 내가 서로 어떻게 다르면서 같은가 하는 수수께끼 같은 사랑을 스스로 알아차려 삶을 노래하려고 읽습니다. 〈파도책방〉에 머무르며 여러 가지 책을 누립니다. 판이 끊긴 아름다운 그림책을 읽고, 예전에 살림꾼 어머니가 읽던 달책에 곁달린 책을 폅니다. 1962년에 나온 어느 일본책에 ‘부산 경문서림’ 쪽종이가 남았습니다. 아스라한 자취를 눈여겨보는 눈길이 있을 적에만 문화예술재단에서 일하도록 하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아니, ‘책·문화·예술’을 다루는 벼슬자리(공무원)에 서려면 적어도 이레마다 사흘씩 책집마실을 하는 매무새여야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아름책이어도 오래오래 새책집에 깃들지 못합니다. 우리나라가 아름나라가 아니거든요. 아름마을에 아름손길에 아름눈빛으로 가득한 터전이라야 아름책이 오래오래 반짝입니다. 헌책집이란, 반짝이는 아름책을 새롭게 만나서 삶넋을 곱게 북돋우는 징검다리이기도 합니다. 잘팔리는 아름책도 있지만, 사라진 아름책도 많습니다. 사랑받는 아름책도 있고, 사랑을 못 받고 사라진 아름책도 많아요. 아름책을 한아름 품고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ㅅㄴㄹ


《新制 英文法 (改訂重版》(小野圭次郞/科學社 英語部 엮음, 과학사, 1952.11.1.첫/1957.1.25.고침)

《겨우살이硏究》(김익달·박재서 엮음, 학원사, 1966.11.1.)

- 《주부생활》 20호(1966.11.) 별책부록

《병아리 飼育法》(한국축산기술연구회 엮음, 송원문화사, 1967.10.15.)

《鉢もの園藝》(편집부 엮음, 主婦の友社, 1958.2.25.첫/1962.2.1.23벌) 

- “釜山 耕文書林 TEL 6568”에서 전화번호를 지우고 “(2) 0362”로

《케테 콜비츠》(카테리네 크라머/이순례·최영진 옮김, 실천문학사, 1991.2.30.)

《세계의 애송시》(천양희 엮음, 청하, 1989.5.20.)

《안자이 미즈마루》(안자이 미즈마루·MOOK 편집부/권남희 옮김, 씨네21북스, 2015.5.15.)

《꼬마 다람쥐 얼》(돈 프리먼 글·그림/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2010.11.18.)

《아빠는 하나 아기는 열》(베네딕트 게티에 글·그림/조소정 옮김, 베틀북, 2000.8.1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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