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새로읽기 (2021.10.9.)

― 인천 〈모갈1호〉



  책집은 얼마나 자주 들르면 될까 하고 묻는 이웃님한테 “틈틈이 들르면 됩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틈틈이’란 “지난걸음에 장만한 책을 웬만큼 읽었거나 거의 읽어낸 즈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 읽고서 들러도 좋고, 이제 다 읽겠네 싶어 새 읽을거리를 미리 챙기려고 찾아도 좋습니다.


  저는 눈에 뜨이는 대로 책을 장만합니다. 시골에서 살기에 책집마실이 뜸한 탓이기도 하지만, 오늘 눈에 뜨인 책은 오늘 장만해야 비로소 느긋이 읽고 살피면서 맞아들일 만해요. 이제는 누리그물이 널리 뻗었고, 여러 누리책집은 어마어마하다 싶은 책을 올려놓습니다. 그렇지만 온누리 모든 책이 누리책집에 오르지 않아요. 온누리 모든 책이 그때그때 책집에 다 꽂히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아주 뜻밖이거나 반갑구나 싶은 이음길로 책을 만납니다. 새책이건 헌책이건 우리가 어느 책집을 찾아간 그날 책시렁에 반듯하게 꽂힌다고 여기기는 어렵습니다. 여태 나온 책이 얼마나 많은가요. 아무리 많이 팔리거나 읽히는 책이라 해도 때마침 우리 눈에 안 뜨일 때도 숱합니다.


  가을빛이 영그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모갈1호〉로 찾아갑니다. 오늘 저녁에 할 일을 어림하고, 낮나절에 느긋이 맞이할 책을 생각합니다. 따로 무슨 책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책집을 찾지 않습니다. 그곳에 가면 그곳에서 그동안 갖추어 놓은 책을 돌아보면서 눈도 손도 호강하겠다고만 생각합니다.


  오늘 〈모갈 1호〉에서 마주한 책은 두엇을 빼고는 예전에 읽었습니다. 예전에 책집에서 선 채로 읽은 책이 있고, 동무가 읽는 책을 어깨너머로 읽기도 했고, 장만해서 읽었다가 살림돈이 빠듯한 나머지 밥값·집삯하고 바꾸기도 했습니다.


  손을 떠난 책이 곧 다시 찾아오기도 하지만, 스무 해나 마흔 해 뒤에라야 어렵사리 만나기도 합니다. 어느 책은 여든 해를 지내도 좀처럼 못 볼 수 있을 테지요.


  읽은 책을 되읽으며 예전하고 오늘 새롭게 헤아리는 눈길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스친 대목을 오늘은 밑줄을 긋습니다. 예전에는 거듭 되뇌던 대목을 오늘은 설렁설렁 넘깁니다. 예전에 알쏭하던 글님 몸짓을 이제 환하게 알아챕니다. 오늘 알쏭해 보이는 글님 자취는 앞으로 열스물이나 서른마흔 해 뒤에 새삼스레 알아보겠지요.


  똑같은 하루란 없습니다. 모든 하루는 누구한테나 달라요. 찍는곳(인쇄소)에서는 똑같이 척척 찍어서 내놓지만, 책집지기 손을 거쳐 다 다른 마을책집 책시렁에 놓이면, 바야흐로 모든 책은 다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품는 길로 들어섭니다. 새로읽기를 하는 아침입니다. 새로읽기로 흐르는 낮입니다. 새로읽기가 깊은 밤입니다.


《꼬마 철학자 1·나의 어린시절》(알퐁스 도데/이재형 옮김, 산하, 1987.3.20.첫/1988.2.23.열넉벌)

《꼬마 철학자 2·파리 30년》(알퐁스 도데/김종태 옮김, 산하, 1987.11.10.첫/1988.1.1.석벌)

《假宿의 램프》(조병화, 민중서관, 1968.4.30.)

《늑대가 온다》(최현명, 양철북, 2019.6.19.)

《살림》(김지하, 동광출판사, 1987.9.25.)

《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김영도, 수문출판사, 1990.6.15.)

《영광의 북벽》(정광식, 수문출판사, 1989.2.15.)

《韓國通史》(한우근, 을유문화사, 1970.3.15.첫/1981.8.30.24벌)

《쓸모없노력의 박물관》(리산, 문학동네, 2013.5.31.)

《그리운 네안데르탈》(최종천, 2021.7.23.)

《島山思想》(안병욱, 대성문화사, 19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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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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