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멧숲 사이로 (2021.9.26.)

― 상주 〈오롯서점〉



  상주 시내는 큰고장을 닮았다고 할 만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오롯이 멧숲입니다. 서울내기 눈으로 상주 시내는 조그마할는지 모르나, 시골내기 눈으로 상주 멧숲은 그윽하면서 푸르고 널찍하게 우거집니다.


  지리산 기스락에서 꽃잔치(혼례식)를 연 윗내기(선배)가 있어 일부러 서울부터 자전거를 달려 상주를 거쳐 간 적이 있어요. 그때가 2005년이었지 싶은데, 그 뒤 열여섯 해가 지난 2021년 가을에 작은아이하고 상주 시내를 찾습니다. 이곳에는 마을책집 〈오롯서점〉이 있어요. 우리말 ‘오롯’은 ‘오로지·오직’하고 말밑이 같고, ‘옹글다·영글다’하고 맞물리며, ‘온(온누리)·올(올차다)’이며 ‘알(알맹이)·얼(숨결)’하고 잇닿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도 말밑으로 얽혀요.


  마음길을 오롯이 그립니다. 마음결을 옹글게 가눕니다. 마음빛을 알뜰히 돌봅니다. 마음밭을 알차게 가꾸고, 마음씨가 영글도록 하루를 노래합니다. 가을은 깊어 가고 햇볕은 뜨끈뜨끈합니다. 밤알이 굵고 첫봄에 피어나는 들꽃이 슬슬 새로 깨어납니다. 골짝물은 매우 시원하고, 숲빛은 조금씩 가을무지개로 달라집니다.


  그런데 작은아이가 영 언짢습니다. 상주 화북면 입석 안골로 바로 안 가고 시내에 머무르니 따분합니다. 책집을 빙글빙글 돌며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작은아이를 바라보다가 이 아이가 실컷 뛰놀 만한 풀밭부터 찾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문득 때를 봅니다. 13시 01분인데, 13시 10분에 화북 입석으로 가는 시골버스가 있습니다. ‘달려가면 시골버스를 잡을까?’ 책값을 셈하고 등짐을 질끈 챙기고 끌짐(캐리어)을 쥡니다. “산들보라 씨, 우리 달려 볼래? 버스 타는 데까지 달리자.”


  작은아이는 바람을 가르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도록 달리면서 웃습니다. 활짝 웃는 작은아이는 앞서 달리다가 쉬다가 다시 달리다가 쉬다가 걷습니다. 우리는 6분 만에 시외버스나루에 닿고, 13시 9분에 시골버스에 오릅니다. 시골버스는 한 시간 20분 남짓 상주 멧자락을 굽이굽이 달립니다. 단돈 2000원으로 상주 멧골을 두루 구경하는 시골버스입니다.


  숲에서 아름드리로 자란 나무를 고맙게 얻어 종이를 빚고, 이 종이로 책을 묶습니다. 우리는 나무(붓)를 쥐어 나무(종이)에 우리 삶(이야기)을 새겨서 나무(책)를 펴내어 나누고 읽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나무하고 숲을 만나는 셈이요, 책을 다루는 지기라면 어느 고장에서나 나무하고 숲을 이웃하고 나누는 길입니다. 상주는 자전거고을로 이름이 높은데, 숲고을로도, 또 조촐히 책고을로도 차근차근 가지를 뻗는 아름터로 어우러지면 좋겠어요.


ㅅㄴㄹ


《나무처럼 살아간다》(리즈 마빈 글·애니 데이비드슨 그림/김현수 옮김, 알피코프, 2020.9.25.)

《섬 위의 주먹》(엘리즈 퐁트나유 글·비올레타 로피즈 그림/정원정·박서영 옮김, 오후의소묘, 2019.4.2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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