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그리는 하루 (2021.8.19.)

― 서울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아침 일찍 부천에서 김포로 갔다가 서울 불광동을 거쳐서 영천시장 한켠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까지 옵니다. 걷고,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걷고 전철을 탑니다. 시골에서는 한나절을 기다리는 버스이지만, 큰고장에서는 버스도 전철도 매우 잦고 많습니다. 가까운 길도 멀찍한 길도 손쉽게 갑니다. 그렇지만 잦고 많은 탈거리에는 사람이 많고, 한길은 시끌벅적합니다. 풀벌레가 깃들 틈이 안 보이고, 참새나 비둘기가 목을 축이거나 먹이를 찾을 틈새가 안 보입니다.


  바깥일을 보며 다닐 적에는 나무 곁을 찾아 앉으며 조용히 눈을 감곤 합니다. 땀에 젖은 짐을 다 내려놓고서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을 누리며 살짝 잠이 들면 어느새 나무랑 땅이랑 바람이랑 해가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밥 한 그릇이 아닌 풀꽃나무가 살리는 기운입니다. 주전부리로 다릿심을 끌어올리지 않습니다.


  손길이 얼마나 많이 닿아 이렇게 책찻집이 되었나 싶은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에 들어섭니다. 왁자지껄한 모든 바깥소리를 가리고, 매캐하게 일어나는 부릉질도 치워 줍니다. 야트막한 다락은 고무신을 벗고 올라가서 다리를 쭉 뻗고 토닥이기에 좋습니다. 커다란 책집이나 책숲(도서관)에는 이런 다락이 있을까요? 어린이가 책을 보는 자리는 이제 신을 벗고 뒹굴며 누리도록 꾸미곤 합니다. 아이들은 책을 보다가 낮잠에 들어 숨을 돌려도 즐겁습니다. 어른도 책을 펴다가 가만히 엎드리거나 누워 숨을 돌리면 느긋하지요.


  서울이라는 하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닥거립니다. 무엇이든 넘치고 언제나 너울거려요. 북새통이라 멋스러울는지 모르고, 북적판이기에 나무하고 풀꽃하고 바람하고 벌나비를 그리는 쉼터를 더 넓게 둘 만합니다. 길손글(방명록)을 적는 자리가 있어 오늘 하루 누린 이야기를 어떻게 적을까 생각하며 책시렁을 다시 돌아봅니다. 마을책집 이름에서 귀띔을 얻어 노래꽃 ‘서울하루’를 슥슥 씁니다.


  2000년부터 몇 해쯤 종로구 교동 나무집(적산가옥) 2층에 삯을 얻어서 지낸 적 있는데, 밤에 골마루 바깥닫이를 활짝 열어 놓으면 건너켠 골목집 아이가 피아노를 두들기는 소리가 흘러들고, 족제비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우리 집엔 책만 있어 네 먹이는 없다만, 쥐가 어디에 있을는지 모르지.”


  숲을 밀어낸 서울이기에 더욱 푸른길을 그리면서 푸른쉼터를 꾸릴 만합니다. 나무 한 그루가 마음껏 하늘바라기를 하기 힘든 서울이라 더더욱 손바닥만 한 마당을 돌보면서 나무꽃을 그릴 만합니다. 높이 솟는 서울보다는 마당을 두고 빈터를 열며 멧새를 이웃으로 삼고 들풀을 동무로 여기는 숨결이 새로 피어나기를 빕니다.
















《Elsie's Bird》(Jane Yolen·David Small, Philomel, 2010.)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이장희, 문학동네, 2013.3.20.)

《책장 속 티타임》(기타노 사쿠코·강영지 그림/최혜리 옮김, 돌베개, 2019.2.28.)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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