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 2021.9.6.

말 좀 생각합시다 71


 -ㅁ


  우리말을 보면 ‘-ㅁ’을 붙여 이름씨꼴로 삼곤 합니다. ‘쉬다’를 ‘쉼’으로, ‘하다’를 ‘함’으로, ‘보다’를 ‘봄’으로 써요. 이처럼 이름씨꼴로 삼으며 생각을 펼 자리가 있습니다만, 요즈막에는 옮김말씨(번역어투)가 크게 불거지면서 아무 데나 ‘-ㅁ’이 들러붙는구나 싶어요.


  이를테면 “이들 기술記述에는 정확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무슨 말일까요? 우리말답게 손질하자면 “이런 말은 꼼꼼하지 않다”나 “이 같은 말은 허술하다”나 “이렇게 쓰면 꽤 어설프다”입니다.


  글을 쓰는 분은 으레 “마음이 조금씩 따스해짐을 느꼈다”처럼 쓰는데 “마음이 따스하다고 느꼈다”나 “마음이 따스하다”고 해야 알맞습니다. 또는 “얼어붙은 마음이 조금씩 녹는다”고 할 만합니다.


  “작업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같은 말씨도 흔히 봅니다. “틀림없이 일을 한다”나 “틀림없이 일을 하는 듯하다”로 손볼 노릇입니다. 이밖에 “괴로움을 안고(→괴로워하고)”나 “전혀 다름이 없다(→똑같다)”나 “아쉬움이 있다면(→아쉽다면)” 같은 말씨가 자꾸 번져요.


  우리말은 그림씨(형용사)하고 움직씨(동사)를 고스란히 살려서 쓰는 맛인데, 우리말맛을 버리는 셈입니다. 이름씨로 바꾸는 글맛은 이렇게 않아요. 우리말에서 이름씨로 바꾸는 글맛이란 “쉬는 터전”을 ‘쉼터’로 짓고 “노는 곳”을 ‘놀이터’로 지으며 “짓는 사람”을 ‘지음이’로 갈무리하는 길에서 찾을 만합니다.


  ‘이름’이라는 낱말부터 ‘이르다 + ㅁ’입니다. 이처럼 ‘괴로움·아쉬움·슬픔·웃음’ 같은 낱말을 널리 쓸 만하고 ‘쓰임새·씀씀이’처럼 얼마든지 살려쓰는 길이 있어요. 다만 “온갖 길을 배우면서”나 “여러 가지를 배우며”라 하면 될 말을 “온갖 지식을 배움으로써”처럼 써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이런 이름씨꼴은 영어 같거든요. 마치 영어처럼 쓴 옮김말씨예요. 아니, 영어하고 우리말 사이에서 헷갈린 채 엉성하게 튀어나오는 말씨이지요. 이제는 ‘앞가림’을 할 때입니다.


ㅅㄴㄹ


참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잠이 깨이던 우리들의 상쾌한 아침은

→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깨던 싱그러운 아침은

《어제와 오늘의 사이 3 지금은 몇時인가》(이어령, 서문당, 1971) 230쪽


생명의 소중함을 재치 있게 표현할 줄 아는 영리함을 지닌 훌륭한 작가이다

→ 값진 목숨을 멋지게 그릴 줄 아는 똑똑하고 훌륭한 분이다

→ 아름다운 숨결을 훌륭히 선보일 줄 아는 똑똑한 그림님이다

→ 빛나는 숨소리를 알뜰살뜰 담아낼 줄 알아 슬기롭고 훌륭하다

《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안노 미쓰마사/송해정 옮김, 시공주니어, 1999) 31쪽


폐가임에 틀림없는 제 살집 속에서 나와

→ 틀림없이 낡은 집인 제 살집에서 나와

→ 참말 낡아빠진 제 살집에서 나와

《흰 책》(정끝별, 민음사, 2000) 16쪽


우리는 마땅히 돈의 소중함을 알고 돈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 우리는 마땅히 돈이 값진 줄 알고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

→ 우리는 마땅히 돈이 고마운 줄 알고 사랑하고 살펴야 한다

《김훈 世說》(김훈, 생각의나무, 2002) 13쪽


공동체의 파괴자라고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다

→ 두레를 무너뜨린다고 해도 좋다

→ 모둠살이를 허문다고 해도 된다

→ 마을을 짓밟는다고 말할 만하다

《그들이 사는 마을》(스콧 새비지 엮음/강경이 옮김, 느린걸음, 2015)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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