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8.23.
《보리 초등 국어 바로쓰기 사전》
남영신 엮음, 보리, 2021.7.28.
책숲 꽃종이를 부친다. 등짐 가득 짊어지고 읍내 우체국을 다녀온다. 집으로 돌아오니 곧 비가 쏟아진다. 늦여름비는 바깥일을 보고 올 동안 살짝 멎어 주었구나. 지난 8월 20일에 전주마실을 하면서 《보리 초등 국어 바로쓰기 사전》을 보았다. 마을책집에서 아무 곳이나 펼쳐서 뜻풀이를 보았고, 책집에 온 손님하고 함께 읽으면서 틀리거나 어긋나거나 엉뚱한 뜻풀이를 수두룩하게 짚었다.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살피면 얼추 낱말책(사전) 한 자락 부피만큼 틀리거나 어긋나거나 엉뚱한 뜻풀이를 보겠구나 싶다. 그런데 틀리거나 어긋나거나 엉뚱한 뜻풀이만 말썽이지 않다. 뜻풀이로 넣은 글 얼개가 우리말답지 않다. “바로쓰기 사전”이라면 말씨부터 우리말답게 가누거나 다스리거나 손질할 노릇일 텐데.
“가 : 1. 문장의 주어임을 나타내는 말 4. 문장의 보어임을 나타내는 말”
“-의 + 임을”은 ‘옮김말씨+일본말씨’이다. 이 뜻풀이는 적어도 “문장에서 주어라고 나타내는 말”처럼 토씨를 바로잡아야지. 더 손질한다면 “글에서 임자말(주어)이라고 나타내는 말”처럼 적을 만하다. “문장의 보어”로 적은 뜻풀이도 얄궂다. 엮은이한테는 ‘보어(補語)’가 입에 익구나 싶으나, 어린이한테 이런 말을 써야 하나? ‘덧말·보탬말·붙임말’로 고쳐쓸 노릇이다.
가까스로 : 1. 애를 써서 겨우. 매우 어렵게 2. 겨우 빠듯하게
가꾸다 : 1. 식물 따위를 보살펴서 기르다 2. 보기 좋게 만들거나 보살피다 3. 생각이나 희망 따위를 소중히 키우다
가늠 : 1. 목표나 기준에 맞고 안 맞음을 헤아림 2. 어림잡아 헤아림
가르다 : 1. 하나를 몇 부분으로 나누다 2. 공기나 물을 양쪽으로 나누며 움직이다 5. 잘잘못을 따져서 구분하다
가리다 2 : 1. 여럿 가운데서 하나를 구별하여 고르다 2. 잘잘못이나 좋은 것과 나쁜 것 따위를 따져서 분간하다 3. 낯선 사람을 구별하여 싫어하다 5. 싫은 음식을 물리치고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서 먹다
움츠리다 : 몸이나 몸의 일부를 몹시 오그리어 작아지게 하다
어울리다 : 1. 여럿이 서로 잘 조화되어 자연스럽게 보이다
선하다 : 잊히지 않고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듯하다
선하다(善-) : 올바르고 착하다
섣부르다 : 일처리 솜씨가 어설프고 탐탁하지 못하다
빼다 : 1. 전체에서 제외하거나 덜어 내다 2. 살, 기운 따위를 줄이거나 없애다
대하다(對-) : 1. 마주 향하다 2. 상대하다 2. 대상이나 상대로 삼다
덜다 : 1. 걱정이나 슬픔 따위를 줄이다. 적어지게 하다 2. 얼마를 떼어 내다
몇 가지 뜻풀이만 조금 옮겨 본다. ‘가까스로 = 겨우’로 풀이하면 ‘겨우’는 뭘까? “겨우 빠듯하게”라 풀이하는데 ‘빠듯하다’는 뭘까? ‘가꾸다 = 보살피다·기르다·키우다’로 풀이하는데 ‘보살피다기르다·키우다’는 무엇이고, 서로 어떻게 다른 말일까? ‘가늠 = 헤아리다·어림잡다’로 풀이하면 세 낱말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가르다 = 나누다·구분’으로 풀이하면 세 낱말은 무엇일까? ‘구분’은 ‘가르다·나누다’를 옮긴 한자말일 텐데, 이런 뜻풀이를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이 봐도 아리송할 뿐이다. ‘가리다 = 구별·고르다·분간’으로 풀이하면 뒤죽박죽이 된다. 한자말 ‘구별·분간’은 또 어떻게 풀이하려고? 돌림·겹말풀이에 갇힌다. ‘움츠리다 = 오그리다’로 풀이하면 ‘오그리다’는 뭘까? ‘어울리다 = 잘 조화되다’로 풀이하면 ‘조화’는 뭘까?
그렇다고 《보리 초등 국어 바로쓰기 사전》만 뜻풀이가 엉성하지 않다. 《보리 초등 국어사전》도 똑같이 엉성하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도 나란히 엉성하다.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조화’를 “서로 잘 어울림”으로 풀이하고, ‘어울림’을 “서로 잘 조화됨”으로 풀이한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낱말책이 이렇게 뜻풀이를 서로 베낀다. 틀린 뜻풀이를, 겹말·돌림풀이에 갇힌 뜻풀이를 여태 안 고친다. 언제 고치려나? 아니, 고칠 마음이나 눈길이 있는가?
‘선하다 = 생생하다’로 풀이하면 ‘생생하다’는 뭘까? 한자말 ‘선하다(善-) = 올바르고 착하다’라니, ‘올바르다’하고 ‘착하다’는 뭘까? ‘옳다’하고 ‘바르다’까지 짚으면 더 끔찍할 듯하다. ‘섣부르다 = 어설프다·탐탁하지 못하다’로 풀이하면 ‘어설프다’는 어찌 될까? ‘탐탁하다’는 또? ‘빼다’를 한자말 ‘제외’로 풀이하다가 우리말 ‘덜다·줄이다·없애다’로 풀이하면, 이 두 가지 우리말은? 아니나 다를까, ‘덜다’를 ‘줄이다·떼다’로 풀이하면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외마디 한자말 ‘대하다(對-) = 마주 향하다’로 풀이하면 ‘마주’하고 ‘향하다’는 뭘까? ‘대하다 = 상대하다’이기도 하다면 ‘상대하다’는 또 뭘까?
어린이한테 낱말을 더 많이 보여주려고 너무 애쓰지 않기를 바란다. 낱말을 열 가지만 짚어 주더라도 뜻풀이를 찬찬히 다듬을 노릇이다. 비슷하면서 다른 낱말을 또렷이 갈라서 제대로 보여줄 노릇이다. 그리고, 한자말을 우리말로 풀이하는 버릇하고, 우리말을 한자말로 풀이하는 버릇을 제발 걷어내자. 언제까지 이런 바보스런 굴레를 붙잡을 셈인가. 여느 책이라면 숱한 한자말을 그냥 쓰더라도 우리 낱말책이라면, ‘국어사전’이라면 우리말로만 뜻풀이를 하고 보기글을 붙일 줄 알아야지 싶다. 또한 글결도 우리말답게 손질해야지 싶다. 낱말책이 우리말 쓰임새를 반듯하고 번듯하게 밝히지 않으면 무슨 쓰임새요 쓸모가 되겠는가.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