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마음이 닿으니까 (2021.7.29.)
― 부산 〈백경〉
반가운 일은 불쑥 찾아옵니다. 늘 반가운 일이라면 온하루가 불쑥불쑥 솟아나는 들풀이 물결친다고 할 만해요. 서운한 일은 문득 찾아듭니다. 늘 서운한 일이라면 온날이 문득문득 쓸쓸하다고 할 만해요. 살면서 반갑거나 서운한 일을 마주할 적에 ‘이처럼 느끼는 내’가 참다운 마음인지 아닌지 돌아봅니다. 부산처럼 커다란 고장에 마실하면 으레 밀치거나 밟고 지나가는 바쁜 사람이 가득합니다. 부산 같은 큰고장에는 바지런히 살림을 지으며 즐겁게 나누려는 사람도 많아요.
시골이기에 씩씩하거나 푸르게 마음을 기울이는 일꾼이 적지도 많지도 않습니다. 이 삶자락을 헤아리노라면 언제나 하나를 느껴요. 삶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고 노상 새롭게 맞닥뜨리는 이야기일 뿐이니, 스스로 사랑이란 눈빛이 되어 즐겁게 노래할 줄 아는 마음으로 다스릴 노릇이지 싶습니다.
한두 다리를 거치면 모두 이웃이라고 합니다. 한두 다리조차 안 건너더라도 서로 동무라고 느껴요. 마음을 틔우면 누구나 이웃이요, 마음을 닫으면 아무도 동무가 아닙니다. 왼켠하고 오른켠을 가른다든지, 너랑 나를 자른다면, 끼리끼리 만날 뿐이면서 울타리를 쌓아요. 갈랫길을 생각하며 걷고 전철을 갈아타서 〈백경〉에 닿습니다. 이리로 가면 되려나 어림하고, 요쪽으로 돌면 나오려나 헤아립니다.
모든 책집은 턱을 넘어설 때까지 수수께끼입니다. 어느 책집이든 턱 너머로 들어서면 마을이며 고을을 빛내는 이야기가 흐드러지며 해맑습니다. 더 크기에 책을 더 갖추지 않고, 더 작기에 책을 덜 갖추지 않아요. 우리는 마음에 즐겁게 노래를 담고 싶은 만한 크기로, 또 이웃이랑 동무하고 사이좋게 춤추며 놀고 싶은 만한 너비로 책집을 꾸리고 보금자리를 여밉니다.
책을 사러 책집에 갑니다. 새책집 새책이라면 어느 책집에서든 장만할 만하고, 헌책집 헌책이라면 바로 이 책집에 가야 비로소 장만합니다. 마을책집에서 마주하는 새책은 날마다 숱하게 넘실거리는 새 이야기 가운데 오늘 이 자리에서 더 소근소근 나누고 싶은 마음을 들려줍니다. 마을책집에서 스치는 헌책은 오늘까지 살아낸 발자취에 서린 숨빛을 새삼스레 나누고 싶은 마음을 밝혀요.
책을 살 적에는 따로 안 살펴서 몰랐는데, 이해인 님 책은 안쪽에 글님 손글씨가 깃듭니다. 책집지기님이 여쭈어 받아오시는구나 싶습니다. 모든 책은 마음이 닿기에 씁니다. 어느 책이든 마음이 닿기에 알아봅니다. 모든 책은 마음을 기울이기에 책시렁에 건사합니다. 어느 책이든 마음을 담아서 읽고 새기며 이야기합니다. 흰고래는 바다에서도 뭍에서도 흰고래입니다. 하얀 빛살이란 해를 품은 이야기입니다.
ㅅㄴㄹ
《그 사랑 놓치지 마라》(이해인, 마음산책, 2019.11.25.)
《맹수와 사냥꾼 1》(김왕석, 스포츠서울, 1989.9.20.)
《하하하, 부산》(배길남, 책읽는저녁, 2019.11.1.)
《the two KOREAS》(National Geographic, 2003.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