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살림숲을 건사하는 손 (2021.7.14.)

― 제주 〈동림당〉



  아침 아홉 시에 고흥 녹동나루에서 배를 타려고 새벽 여섯 시부터 자전거를 탑니다. 제주에서 만날 이웃님한테 드릴 책이며 노래꽃판을 잔뜩 짊어지고 달리니 등판과 등짐은 땀으로 흐벅집니다. 뱃길은 한나절(4시간)입니다. 이동안 손님칸에 누워서 등허리를 펴기도 하고 노래꽃을 새로 씁니다. 글꽃(동화)도 한 자락 써요.


  배에서 내리고 보니 성산나루가 아닌 제주나루입니다. 내릴 곳을 엉뚱하게 알았으니, 해날(일요일) 돌아갈 배도 제주나루인 듯한데, 물어볼 사람이 없습니다. 손님이 배에서 다 내리니 제주나루 일꾼이 모두 자리를 비웁니다. 제주로 오면 다니려고 짠 그림이 모두 틀어집니다만, 제주 시내 책집으로 가자고 생각하며 〈동림당〉을 찾아 달립니다. 걷거나 버스를 탈 적에는 몰랐는데 제주 시내에 오르내리막이 꽤 많군요. 인천이나 부산도 엇비슷합니다. 오래도록 이은 마을은 비탈을 그대로 살려 디딤돌을 놓아요. 이때에는 가파른 데도 많지만 집집마다 해바람을 알맞게 나눕니다. 처음부터 삽차로 크게 밀어 판판하게 때려지은 데는 높다란 잿빛집이 가득하고 자동차가 다니기에 좋습니다.


  제주 〈동림당〉은 책집하고 살림숲(박물관)을 나란히 건사합니다. 묵은 책·새뜸(신문)·세간에서 제주 발자취를 조촐히 읽도록 선보입니다. 흔히 ‘박물관’이란 일본스러운 이름을 쓰지만, 이 이름으로는 어린이한테 우리 삶자취를 들려주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살림숲’이란 이름을 지어 보았어요. 우리가 살림을 가꾸면서 곁에 둔 연모나 연장을 그러모은 데를 가리키자면 ‘박물 + 관’이 아닌 ‘살림 + 숲’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숲이 있기에 집과 밥과 옷을 얻습니다. 바다숲이 있기에 비바람을 누리면서 싱그러이 살아갑니다. 별숲이 있기에 밤낮이 흐르는 하루를 맞이합니다. 책숲이 있기에 오랜 슬기를 바탕으로 생각날개를 즐거이 펴는 길을 엽니다. 여기에 살림숲을 살그마니 놓아 우리 걸음걸이를 되새깁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마음이란 숲에 묻는 씨앗으로 바라볼 줄 안다면, 나무숲·바다숲·별숲·책숲·살림숲 곁에 말숲·글숲을 놓을 만하지 싶어요. 우리가 쓰는 말은 숲처럼 푸르고 짙고 싱그러우면서 사랑스러울 적에 아름답다고 봅니다.


  숲에서 태어난 숨결로 살림을 지어요. 숲에서 피어난 숨빛으로 삶을 가꾸어요. 숲에서 자라난 말로 이야기를 펴요. 억지스레 나무를 때려박는들 숲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 곁에 새가 있고, 새 곁에 풀벌레가 있고, 풀벌레 곁에 벌나비에 잠자리에 들짐승이 두루 어우러지기에 숲입니다. 모두이자 하나인 숲이 책으로 찾아옵니다.


ㅅㄴㄹ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디자인하우스, 2005.8.17.)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노태우, 을유문화사, 1987.11.20.)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이계삼, 녹색평론사, 2009.10.29.)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허영자, 자유문학사, 1986.5.25.)

《사람 자연 신》(F.S.C.노드롭/안경숙 옮김, 대원사, 1989.9.1.)

《추억이 사는 연못》(이소영, 아동문예사, 1996.7.15.)

《중고생을 위한 도올 선생의 철학 강의》(김용옥, 통나무, 1986.12.15.)

《말하는 나무 의자와 두 사람의 이이다》(마쯔따니 미요꼬 글·쯔까사 오사무 그림/민영 옮김, 1996.6.1.)

《기억법》(이강백, 대한두뇌개발연구원, 1976./1984.8.25.고침판)

《고등학교 독서》(오세영·김영철, 천재교육, 1996.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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