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게를 품다 (2021.7.15.)

― 제주 〈시인의 집〉



  어제는 저녁 여섯 시 무렵 일찌감치 길손집에 들었습니다. 고흥집에서 녹동나루까지 자전거를 몰았고, 제주나루에 내려서도 한참 자전거를 타느라 온몸과 등짐이 땀으로 흥건해요. 빨래부터 하고 땀내음을 씻어야겠다고 여겼는데, 이튿날인 오늘 아침까지 치마바지가 덜 마릅니다. 오늘도 자전거를 신나게 몰 테니 다시 땀범벅일 테고, 덜 마른 치마바지를 입고서 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꽃송이처럼 피어나는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달립니다. 해도 구름도 좋은데 자전거로 움직이는 분은 아무도 안 보입니다. 길에 자동차는 엄청 많습니다. 열일곱 해쯤 앞서 푸름이를 이끌고 자전거를 달릴 적에 지나간 조천 마을길을 오늘 새로 만납니다. 돌담길을 천천히 지나 〈시인의 집〉을 알리는 조그마한 이름판을 봅니다.


  마을책집 마당에서 땀을 들이고 손낯을 씻습니다. 한참 땀을 식히고서 안쪽으로 들어섭니다. 땀을 실컷 뺐으니 뜨거운 잎물(차)을 마십니다. 땡볕에 자전거를 한참 탈 적에는 찬물을 섣불리 마시면 안 됩니다. 오히려 뜨겁거나 따듯한 물을 마셔야 몸이 사르르 풀려요. 달아오른 몸에 찬물을 넣으면 속이 다칩니다.


  바다하고 하늘이 만나는 곳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곳을 가볍게 돌다가 구석자리에서 슥 움직이는 아이를 봅니다. “넌 어떻게 들어왔니?” 여닫이를 활짝 열어 놓았기에 살그머니 들어온 듯합니다. “너, 여기에서 스스로 못 나갈 듯한데?” 왼손을 살그마니 펴고 오른손으로 슬슬 밀어서 품습니다. “자, 이제 너른바다로 가렴.” 바닷게를 내보냅니다.


  우리는 모두 노래하는 님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젖을 달라며 우는 소리도 노래요, 젖을 빠는 소리도 노래이고, 기저귀에 응가를 하고서 아버지를 부르는 아이 목소리도 노래입니다. 똥오줌기저귀를 복복 비비고 헹구어 삶은 다음 마당에 널어 해바라기를 시킬 적에 마르는 소리도 노래요, 아이를 안고 업으며 마실하는 발걸음 소리도 노래예요. 땡볕에 자전거를 달리며 길바닥에 주루룩 흘러내리는 땀방울 소리도 노래이고, 건널목에서 푸른불을 자동차가 기다릴 적에 풀밭에서 퍼지는 가느다란 풀벌레소리도 노래입니다.


  이 모든 노래에 글씨라는 옷을 입히니 글(문학 또는 시)이 됩니다. 소리를 무늬처럼 그리기에 글이요, 소리에 빛깔을 입히기에 그림이에요. 늘 아이들을 뒤에 태워서 달리던 자전거를 아주 오랜만에 혼자 달렸습니다. 비록 혼잣몸으로 달리지만, 등쪽에서 아이들 웃음소리를 듣습니다. 몸은 떨어져도 마음은 함께 있으니 노래를 들어요. 우리 말소리는 말빛으로, 우리 눈망울은 눈빛으로 늘 어우러집니다.


ㅅㄴㄹ


《그대라는 문장》(손세실리아, 삶이보이는창, 2011.2.13.)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염무웅, 창비, 2021.6.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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