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책집 할아버지 (2021.5.11.)

― 서울 〈책방 진호〉



  책집마실을 할 적에는 “제가 좋아하는(취향) 책”을 살피지 않습니다. 책집에서 살펴서 읽고 장만하는 책은 “좋아하는 책도 싫어하는 책도 아닌, 그 책집에 있는 책”입니다. 언뜻 본다면 딱히 안 좋아하는 책을 왜 읽고 사느냐고 물을 만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저는 이 푸른별(지구)에서 다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녁 살림자리에서 스스로 지은 사랑에 따라 쓴 책을 읽습니다. 이런 저한테 “그러면 그대는 어떤 책을 좋아하는가?” 하고 묻는 분이 많아요. 저는 “제가 쓴 책을 사랑하지요. 제가 읽을 글이란 제가 쓴 글이에요. 이웃님한테도 똑같이 말하지요. 이웃님이 사랑할 책은 이웃님이 손수 쓴 책이에요. 이웃님이 읽을 글은 바로 이웃님이 스스로 삶에서 지어낸 이야기로 쓴 글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저는 제가 쓴 글을 사랑해서 읽듯, 이웃님은 이웃님이 쓴 글을 스스로 사랑해서 읽으면 됩니다. 이런 사랑은 책집에서 새삼스레 얽혀요. 스스로 사랑으로 지은 글을 담은 갖가지 책을 “어떤 삶이고 살림이며 사랑을 담았나” 하는 눈으로 들여다보고 헤아립니다. 책집은 다 다른 삶에서 다 다른 살림으로 지어 다 다른 사랑으로 쓴 책을 다 다른 지기가 다 다른 눈빛으로 갈무리한 이야기밭이라고 느껴요.


  노량진에는 〈책방 진호〉가 있어서 찾아갑니다. 이곳이 없다면 노량진에 걸음할 일이 없어요. 책집지기님은 까만머리 아저씨에서 흰머리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젊은날부터 책집지기로 곁에 책을 둔 손길은 하얀날(노년기)에 이르러 새삼스레 가다듬는 빛이 흐릅니다. 책손은 책집을 꾸준히 찾아가면서 새책을 즐거이 만나고, 책집지기는 책손이 사들이는 책을 헤아리면서 어느 갈래 어느 책이 글꾼(책손)한테 바라지하는가를 어림하고 배웁니다.


  책은 줄거리로만 읽지 않습니다. 책은 이야기로 읽고, 글빛으로 읽으며, 책낯으로 읽기도 하는데, 책에 깃든 손때로도 읽으며, 책을 찾는 책손 눈빛으로도 읽습니다. 책집지기라는 자리는 바로 이 눈빛을 흐뭇하게 누리면서 기쁘게 북돋아 책손하고 펴냄터 사이를 잇는 징검다리일 테지요.


  책손이 손에 쥐고서 눈을 반짝이더니 꼼짝않고 서러 아뭇소리도 안 들린다는 듯 한참 서면, 책집지기도 곁에서 매우 조용히 있습니다. 책손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가만히 보면서 “저 책은 어떤 숨결이 흐르기에 저토록 저이를 새빛으로 이끌까?” 하고 생각하지요. 책손은 “아, 이 빛나는 책을 알아차려서 건사한 손길이란 얼마나 눈부실까?” 하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릴케 短篇選 정의의 노래》(라이나 마리아나 릴케/조철 옮김, 문화공론사, 1977.12.1.)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생활》(릴리어스 호톤 언더우드/김철 옮김, 뿌리깊은나무, 1984.3.1.)

《가가와 도요히코》(스미야 미키오/김은숙 옮김, 보이스사, 2004.10.10.)

《中國民族性硏究》(項退結/홍인표 옮김, 을유문화사, 1975.12.10.)

《율리시이즈 1·2》(J.조이스/김종건 옮김, 정음사, 1968/1973.10.15.거듭)

《몽떼·크리스또 伯爵 1·2·3》(A.뒤마/오증자 옮김, 정음사, 1969/1974.4.15.거듭)

《쟝·끄리스또흐 1·2·3》(로망 롤랑/김창석 옮김, 정음사, 1969/)

《ねえさんといもうと》(シャ-ロット ゾロトウ 글·酒井駒子 옮기고 그림, あすなろ書房, 2019.4.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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