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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ㅣ 창비시선 303
강성은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숲노래 시읽기 2021.6.16.
노래책시렁 189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강성은
창비
2009.6.22.
어릴 적에 동무하고 가로세로놀이를 즐겼습니다. 가로세로를 다섯이나 일곱쯤 그리고는 하나부터 스물다섯을 적어 넣기도 하지만, 사람이름이나 꽃이름이나 나무이름을 적어 넣기도 합니다. 이런 놀이를 하다가 ‘꽃이며 나무를 거의 모르는’ 줄 새삼스레 돌아보았어요. 참말로 어린배움터·푸른배움터(초·중·고등학교)를 다니기만 해서는 나무하고 사귈 일이 드뭅니다.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면 나무하고 어울릴 일이 더더욱 드물어요.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를 읽고서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큰고장살이를 한다면 구두를 신을 일이 잦습니다. 아니, 늘 신겠지요. 시골살이를 한다면 으레 맨발입니다. 이따금 고무신을 뀁니다. 구두살이를 하는 큰고장에서 날마다 무엇을 마주하는 길일까요? 구두살림을 잇는 큰고장에서 나날이 어떤 마음이 되고 눈빛이 되어 삶을 바라볼까요? 발에 딱딱하게 대야 하는 신만큼, 사람 사이에서도 일터 언저리에서도 딱딱하게 버티거나 단단하게 일어서야 할는지 모르는데, 구두차림으로는 나무를 못 탑니다. 무엇보다 나무가 싫어해요. 나무는 맨발을 반깁니다. 풀밭도 맨발을 반겨요. 꽃송이는 맨손을 반기지요. 딱딱한 신은 멀찌감치 밀치고서 맨발에 맨손으로 풀밭에 드러눕고 나무를 타면서 노래해요.
ㅅㄴㄹ
우리는 달려간다 중세의 검은 성벽으로 악어가 살고 있는 뜨거운 강물 속으로 / 연필로 그린 작은 얼룩말을 타고 죄수들의 호송열차를 얻어타고 (오, 사랑/13쪽)
등뒤에서 악령들이 내 긴 머리를 땋았다 / 희고 가녀린 손으로 / 입속에서 허연 김을 내뿜으며 / 나는 손가락을 뻗어 / 뿌연 유리창 위에 밤의 다른 이름들을 써내려갔다 (환상의 빛/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