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6.9.


《우리말 어감 사전》

 안상순 글, 유유, 2021.5.4.



올여름에 선보일 새책을 놓고서 석벌손질(3교)을 마치고 넘겼다. 겨우 석벌째 손질이라지만 말끝 하나 토씨 하나 가다듬고 살피느라 진땀을 뺀다. 이제 숨을 돌리면서 둘레를 살피는데, 글손질을 하는 틈틈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앵두를 따서 재우고 뒤꼍 풀을 베었다.


《우리말 어감 사전》이 나왔다. 낱말책(사전)이 새로 태어나기 어려운 이 나라에서 반갑다. 그런데 왜 ‘어감’일까? ‘뉘앙스’라 안 해서 낫지 않다. 한자말 ‘어감’으로는 ‘말맛’도 ‘말멋’도 ‘말결’도 ‘말빛’도 그리지 못한다. 글님은 우리말(한국말)이 아닌 한자말을 퍽 사랑하는구나 싶다. ‘가면·복면’을 따지는데 ‘탈·허울’은? ‘가치·값어치’는 한자말·우리말로 다를 뿐인걸. ‘값나가다·값지다·값있다’를 갈라야 말맛을 캘 수 있지 않나? ‘간섭·참견’ 사이에 ‘끼다·끼어들다·토달다’는 어찌하지? ‘걱정·근심·염려’를 말하지만 한자말 ‘심려·우려’는? 또 우리말 ‘끌탕·마음쓰다·생각하다·살피다’는? 말빛은 어떡하나?


‘공부·학습’이 아닌 ‘배우다·익히다·닦다·갈다·갈고닦다’를 갈라야 말결을 알 테지. ‘구별·구분’을 아무리 갈라 본들 무엇하랴. ‘가르다·가누다·가름하다·가늠하다·가리다’로 잇닿는 이 비슷한말 꾸러미는 어찌하나. ‘국가·나라’에 언제까지 매이나? ‘나라·누리’가 어떻게 얽히며 다른가를 모른다면 도루묵. ‘너·당신·그대’에 머물지 말고 ‘이녁·자네·그이·그분·님’처럼 결을 넓혀서 말쓰임을 북돋우는 길을 찾아야지 싶다.


‘모습·모양’에서 헤매면 ‘꼴·꼬라지·꼬락서니·낯·얼굴·그림·빛·티·결·무늬’를 놓친다. ‘아이러니·역설’에 매이다 보니 ‘어처구니없다·어이없다·터무니없다·뜬금없다·얼척없다’를 비롯해 ‘거꾸로·거스르다·되레·외려·뒤집다·뒤엎다’는 아예 손을 놓겠지. 더구나 여느 낱말책은 툭하면 돌림풀이에 겹말풀이에 갇힌다. 하긴, ‘모습·모양’을 놓고도 여태까지 숱한 낱말책이 죄다 돌림풀이였다. ‘철학·사상’에 맴돌다 보니 ‘생각·셈·살피다·헤아리다·보다·여기다·톺다·돌아보다(돌보다)·바라보다·들여다보다·훑다·읽다·넋·얼·숨·빛’ 같은 우리말을 찬찬히 갈라서 알맞게 말멋을 살리는 길을 들려주거나 밝히거나 알려주지 못한다.


비슷한말이란 다른 낱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쓰는 말이 얼핏 비슷해 보여도 다른 까닭하고 속내하고 밑뜻을 헤아려야 비로소 말빛을 느끼고 익혀서 즐겁게 쓰는 길을 연다. 쉽게 생각하면 된다. 이제는 영어쯤 누구나 널리 배우니, ‘값어치·가치’를 어떤 영어로 나타낼는지 헤아리면 실마리는 누구나 스스로 풀 만하다. 그리고 ‘값나가다·값지다·값있다’를 영어로 어떻게 옮겨야 어울릴까 하고 스스로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스스로 하나씩 나아가면 수수께끼를 천천히 푼다. 어렵지 않다. 생각해서 하면 된다.


‘생각’이란 뭘까? ‘생각’은 ‘새·새롭다’하고 ‘세다·헤다(헤아리다)’하고 맞물리는, 비슷하지만 다른 낱말이다. 그런데 이 나라 낱말책은 “생각 : 1.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처럼 풀이한다. “헤아리다 : 3. 짐작하여 가늠하거나 미루어 생각하다”로 풀이하지. 이처럼 터무니없는 돌림풀이·겹말풀이에 갇힌 낱말책 얼거리 같은 줄거리로 흐르는 《우리말 어감 사전》이 아쉽다. 애쓰신 줄 알지만 더없이 슬프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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