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그림책은 포근한 멧갓 (2021.4.24.)

― 구미 〈그림책산책〉



  그림책이 그림책이라는 이름을 얻기 앞서 ‘화집·아동화집’ 같은 이름이었습니다. 이제 어린이책을 어린이책이라 합니다만 오래도록 ‘아동서적’이란 이름에 밀렸어요. 요새는 만화책을 ‘그래픽 노블’이라 하는 분이 늡니다. 그림하고 글로 이야기를 엮기로는 그림책하고 매한가지이나, 줄거리나 이야기를 조곤조곤 이어서 꽃처럼 터뜨리는구나 싶은 만화책이라, 저는 ‘그림꽃책’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그림책은 그림으로 빛나고, 그림꽃책은 그림을 꽃처럼 터뜨리면서 빛난다고 느껴요. 글로만 읽으면 ‘동시’요, 가락을 얹어 ‘동요’라 하지만, 어린이 곁에서는 ‘노래’이면 넉넉하지 싶어, ‘노래책’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아침 일찍 포항에서 구미로 건너옵니다. 시외버스는 꽤 돕니다. 갈수록 시외버스가 줄어요. 돌더라도 아직 버스길이 있으니 고맙습니다. 버스나루에서 택시를 타고 〈그림책산책〉으로 달리는데 “멀지도 않은데 택시를 타느냐”며 손님을 나무랍니다. 암말을 안 했습니다. 길잡님(운전기사)한테는 제 등짐이 안 보이나 봐요.


  구미를 사랑하기에 그림책으로 이 고장을 밝히려는 마을책집 앞에 섭니다. 어제는 구름이 잔뜩 끼고 바람이 셌다면, 오늘은 구름이 물러나고 바람이 잡니다. 〈그림책산책〉 알림판 너머로 멧자락 나무물결에 하늘자락 파란빛이 어우러집니다. 이곳을 찾아오는 책손이라면 햇빛에 하늘빛에 숲빛에 골목빛을 나란히 품겠어요.


  해가 비스듬히 스미면서 책집이 환합니다. 나들턱이며 골목 담벼락 기스락을 따라 들꽃이 잎을 내고 꽃을 내놓습니다. 누가 심지 않는다지만, 바람이며 개미가 심고, 새랑 풀벌레가 심으며, 아이들이 씨앗을 후후 불어서 심습니다.


  그림책 《미움》을 책집지기님하고 같이 읽다가 ‘미움’보다 ‘가시’란 낱말로 책이름을 붙이면 줄거리나 이야기를 아이들이 새롭게 바라볼 만하다고 느낍니다. ‘미움’이라 하면 책이름부터 맺음말이 다 보이지만 ‘가시’라 할 적에는 ‘가시’로 가지를 친 ‘갓(가시내·메·모자)’이란 낱말로 생각을 이어 삶을 더 들여다볼 만해요. 물고기를 먹으며 ‘가시’라 하지만, 물벗한테는 ‘뼈’요, 몸을 버티고 이루는 밑틀이자 알맹이인 가시이기도 합니다. 가시내가 가시내인 까닭은 멧봉우리처럼 높고 숲을 품는데다가, 모자처럼 아늑하게 덮고, 사나운 것을 씩씩하게 물리치면서, 사랑으로 가는(가+다) 뼈대(밑틀)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함께 읽으며 어른도 마음을 달래는 그림책입니다. 어린이 눈높이를 살피면서 앞꿈을 그리는 사랑을 담기에 누구한테나 빛나는 그림책이에요. “Wolf in the Snow”나 “Julian is a Mermaid”처럼 짧은 한마디로 살림을 노래하는 그림책이고요.


ㅅㄴㄹ


《그림책이라는 산》(고정순, 만만한책방, 2021.3.12.)

《콜레트가 새를 잃어버렸대!》(이자벨 아르스노/엄혜숙 옮김, 상상스쿨, 2018.4.25.)

《언니와 동생》(샬롯 졸로토 글·사카이 고마코 그림/황유진 옮김, 북뱅크, 2020.2.15.)

《끼인 날》(김고은, 천개의바람, 2021.4.1.)

《미움》(조원희, 만만한책방, 2020.7.6.)

《Wolf in the Snow》(Matthew Cordell, Feiwel & Friends, 2017.)

《Julian is a Mermaid》(Jessica Love, Candlewick press, 201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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