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어린이책집 (2021.2.6.)

― 목포 〈장미서점〉


  큰고장에서는 책집을 빼고는 쳐다보지 않습니다. 아니, 책집 빼고도 쳐다보는 곳이 있으니, 길에 선 나무하고 골목 귀퉁이에서 돋는 조그마한 풀꽃입니다. 흐드러지는 자동차하고 잿빛집은 쳐다볼 일이 없고, 줄줄이 늘어선 가게도 쳐다볼 까닭이 없습니다. 큰고장 큰길에서는 옆사람하고 말을 섞기도 힘들 만큼 시끄럽습니다. 시골 읍내나 면내에서도 자동차가 부릉부릉 지나가면 말소리를 잡아먹습니다.


  부릉거리는 쇳덩이를 모는 이는 그 쇳덩이 탓에 어느 곳이나 얼마나 시끄러운지 얼마나 헤아릴까요? 쇳덩이가 다닐 길을 닦는다면서 풀밭이나 빈터나 숲이나 들을 얼마나 파헤쳤는지 알기나 할까요?


  시골에서 태어났어도 오늘처럼 책을 곁에 두면서 말꽃(사전)을 쓰는 살림을 지었으려나 하고 가끔 돌아봅니다. 어쩌면 그럴 수 있고, 아닐 수도 있겠거니 싶습니다. 왜냐하면 시골에서 태어났어도 어린배움터·푸른배움터를 그대로 다니면서 열린배움터를 바라보는 수렁판에 잠겼다면, 이내 이 모든 사슬을 스스로 끊고서 ‘숲으로 가는 책길’을 조용히 갔으리라 생각해요. 어버이가 저를 배움터 아닌 숲터로 이끌었으면 굳이 종이꾸러미를 곁에 두지 않고 풀꽃나무만 곁에 두면서 맨몸으로 멧골에 안겨서 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목포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가족관광호텔’이란 이름이 붙은 길손집인데, 칸은 제법 넓으나 바닥은 비질을 안 했고, 씻는곳은 좁습니다. 겉이름하고 다르게 허술한 속내입니다. 작은아이하고 일찌감치 나옵니다. 뛰거나 걷고픈 아이는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요. 기차나루 앞자락 저잣거리를 한 바퀴 걷습니다. 옷가게랑 밥가게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옷가게 가운데 어린이옷을 다루는 데는 안 보입니다. 왜 어린이옷은 뒷전일까요? 숱한 밥가게 가운데 어린이가 느긋이 드나들 곳은 어디일까요? 한 군데라도 제대로 있나요? 온통 술집판입니다.


  책집이란 곳에 눈이 간 까닭 가운데 하나는 ‘어린이책집(어린이책 전문서점)’입니다. 어린이가 마음껏 쉴 수 있는 샘터가 바로 책집이었어요. 어린이책집은 책숲(도서관)하고 달리 아이들이 좀 떠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노래를 하면 외려 사랑스레 바라보곤 합니다. 그래요, ‘어린이책숲(어린이책 도서관)’이라면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떠들며 시끌벅한 터전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한참 걷고 걸어서 중앙초등학교 들목에 있는 〈장미서점〉에 닿습니다. 열렸는지 닫혔는지 모르겠습니다. 미닫이에 붙인 이름쪽에 적힌 손전화로 여쭈면 책집을 열어 주실 듯합니다. 겉배움책(참고서)이 바탕인 헌책집일 텐데, 목포시가 이곳을 ‘어린이 책놀이터’로 북돋우는 생각을 편다면 참 아름다우리라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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