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캐낸다 (2020.9.23.)

― 전남 순천 〈형설서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알거나 찾거나 마주하려고 할 적에 ‘캐다·캐내다’란 낱말을 쓰고, ‘캐묻다’도 이런 결을 담아냅니다. ‘파다·파내다’도 이와 비슷할 적에 쓰는데, ‘파묻다’가 되면 안 보이거나 모르도록 하는 흐름이 돼요. 헌책집은 “책을 캐내는” 곳이라고들 하며 “파묻힌 책을 찾아나서는” 데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동안 읽혔지만 더는 읽히기 어렵거나, 여태 읽히지 못한 탓에 책을 버리곤 하는데요, 헌책집은 이러한 책이 되살아나도록 눈을 밝히고 손을 보태고 마음을 기울입니다.


  집이 좁아서, 집을 옮겨야 해서, 책숲(도서관)에서 빌려가는 사람이 없어서, 손길이 많이 닿느라 낡아서, 예전 맞춤법이라서, 오래되고 낡아서, 이래저래 버림받는 책이 있어요. 때로는 사람들이 헌책집에 이 책을 맡기지만, 훨씬 많은 책은 그냥 종이쓰레기가 됩니다.


  버림받은 책은 ‘종이쓰레기’가 되지만 여러 길을 거쳐 새 종이로 살려씁니다. 종이쓰레기가 되어 이제 새롭게 태어날 날을 기다리는 꾸러미 가운데 ‘아직 더 읽을 만하다’ 싶다든지 ‘꼭 살려야겠다’ 싶은 책을 건지는 분이 있어요. 바로 헌책집지기입니다. 여느 살림집에서 내놓은 책을 건사한다든지, 책숲에서 버리는 책을 끌어안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헌책집 일을 이은 분은 날마다 종이쓰레기터를 다녀온다고 해요. 하루라도 종이쓰레기터에 가지 않다가 ‘미처 못 알아보았는데 쓰레기로 끝날 아쉬운 책’이 있으면 가슴이 아프다고 합니다.


  순천 〈형설서점〉 지기님하고 순천·광양에 있는 종이쓰레기터에 같이 다녀 보았습니다. 죽음을 앞둔, 죽음이지만 새삶을 앞둔 종이꾸러미가 그득그득 쌓인 곳에는 죽음내음이 감돕니다. ‘이곳에 이렇게 쏟아부은 책은 이런 냄새가 풍기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사랑받고 손길받는 책에서는 안 나는 냄새예요.


  이른바 ‘어린이 전집’으로 묶은 몰래책 가운데 하나로 나온 ‘위인전’을 봅니다. 모두 32자락으로 나온 꾸러미라는데, 적잖은 어른들은 이런 몰래책으로 ‘아이들 코 묻은 돈’이랑 ‘아줌마 땀 묻은 돈’을 긁었습니다. 한켠에 씨줄책(족보)이 굴러다닙니다. “아따, 요샌 다 디지털인가로 하니 족보도 다 버린당께.” 그렇군요. 저는 씨줄책을 펼 일이 없으니 몰랐습니다. 판이 끊어진 만화책을 만나는데, ‘품책(소장도서)’으로 삼으려던 옛임자 자취가 고스란합니다. 품책이 어쩌다 버림치가 되었을까요. 그렇지만 오늘 이 책은 제 품으로 옮겨 옵니다. “그거 좋은 만화여?” “《천재 유교수》를 그린 분 예전 만화예요. 값진 책인데 여기서 만나네요.” “난 족보는 알아도 만화를 몰라서. 자네랑 안 왔음 그냥 안 집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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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 세계위인전기 15 실리만》(오순택 글·산토 키토 그림, 한국도서출판중앙회, 1989/1992.3.1.재판)

《절대미각 식탐정 3》(테라사와 다이스케/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4.1.25.)

《넌 킹카, 난? 6》(야마시타 카즈미/황윤주 옮김, 대원씨아이, 2001.10.23.)

《넌 킹카, 난? 9》(야마시타 카즈미/황윤주 옮김, 대원씨아이, 2001.11.30.)

《三國志 4》(나관중 글/이문열 옮김, 민음사, 1988.5.30./2003.11.30.3판13)

《국토개발 중점 정책》(이정기, 건설기술호남교육원, 2015)

《2008년 학교문집 제22호 북극성》(순천북초등학교, 2009.2.11.)

《2008 학생수첩》(광양고등학교, 2007)

《金海金氏璿源大同世譜 安敬公派 甲六編》(1977)

《金海金氏璿源大同世譜 總首編》(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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