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꽃

나는 말꽃이다 10 살구



  숱한 책을 펴낸 ‘행림’이란 곳이 있습니다. 이 ‘행림’이 한자말인 줄 알면서 막상 낱말책을 뒤적이지는 않다가 요새 살폈어요. ‘살구숲 = 행림(杏林)’이더군요. 말뜻을 알아내고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왜 이름을 ‘살구숲 출판사’라 안 하고 ‘행림 출판사’라 해야 했을까요? 예전에 책집 이름으로 ‘서림’을 붙인 곳이 많습니다. 2018년에 일본마실을 다녀오다가 ‘-書林’이란 이름을 붙인 책집이 꽤 많아서 갸우뚱하다가 퍼뜩 깨달았어요. 한글로 적은 ‘서림’이건 일본에 수두룩한 ‘書林’이건 우리말로는 ‘책숲’입니다. 왜 우리는 책집 이름으로 ‘-책숲’처럼 붙이지 못 하거나 않았을까요? 살구꽃은 ‘살구꽃’일 뿐, ‘행화(杏花)’가 아닙니다. 복사꽃은 ‘복사꽃·복숭아꽃’일 뿐, ‘도화(桃花)’가 아니지요. 낱말책을 짓는 이는 이 대목을 늘 헤아려야 합니다. 한자말꽃(한자말사전)이 아닌 우리말꽃을 짓는다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어떤 낱말을 처음 만나면서 생각을 새롭게 지펴서 마음에 씨앗으로 심도록 이끌 적에 아름답고 즐거워서 다같이 훨훨 날아오르는 숨빛으로 피어날 만한가를 헤아릴 노릇이에요. 낱말만 많이 싣기보다는, 낱말을 살려서 쓰는 길을 사랑으로 밝히고 즐겁게 북돋아야 참다이 낱말책입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