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 201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윤성근 지음 / 산지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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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48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윤성근

 산지니

 2018.6.20.



그 책들을 통해서 나는 삶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앞서는 생활의 중요함을 알았다. (10쪽)


출근이라는 전쟁을 겪고 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나를 포함해서 많은 직장인들이 출근을 하는 즉시 에너지의 대부분을 소비해 버리게 된다. (73쪽)


월급은 내 노동력을 회사에 제공하고 받는 정당한 대가이기보다는 한 달 동안 이어진 노예 생활을 참고 견딘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102쪽)


책으로 쌓은 100년 역사는 곧 그 나라 문화의 힘을 말한다. (213쪽)


진정한 자립이란 무얼까?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버텨낸다는 것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54쪽)



  몇 해 앞서 미국에서 ‘트럼프’란 사람이 꼭두자리에 설 무렵, 온나라 붓판에서는 ‘돈만 아는 저 사나운 놈팡이 때문에 이 푸른별은 싸움불구덩이가 된다’고 호들갑이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꼭두자리에 선 동안 싸움불구덩이는 커녕 총칼이 춤추는 싸움을 일으킨 적이 없어요.


  2020년에 미국에서 꼭두자리를 새로 뽑는 일을 꾀하면서 여러모로 드러납니다만, 총칼질을 앞세운 쪽은 따로 있고, 총칼장사로 떼돈을 거두어들이던 쪽도 따로 있습니다. 이들은 푸른별에서 트럼프 미국이 싸움판을 벌이지 않는 바람에(?) 떼돈을 벌던 길이 크게 막힙니다.


  이반 일리치 님은 ‘총칼질·싸움불구덩이’가 벼락꾼(억만장자)이 더 벼락꾼이 되도록 가는 길이라고 밝힌 적 있습니다.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윤성근, 산지니, 2018)를 읽으며 그 대목이 떠오르고, 요즈막 미국에서 왜 ‘뒷짓(부정선거)’이 말썽이 되는가도 찬찬히 알아차릴 만하구나 싶어요.


  새는 틀림없이 두 날개로 납니다. 왼날개나 오른날개 하나만으로는 못 날아요. 게다가 한쪽 날개만으로는 걷기도 벅찹니다. 우리는 어느 한켠으로 기울 수 있지만, 어느 한켠으로 기울든 말든 대수롭지 않아요. 이웃이나 동무가 왼날개이건 오른날개이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이웃이나 동무가 ‘착하냐 참하냐’를 볼 노릇일 뿐이요, ‘슬기롭고 아름다운 길을 사랑이란 살림으로 다스리느냐’를 볼 뿐입니다.


  왼날개가 옳지도 오른날개가 틀리지도 않습니다. 그저 날개일 뿐입니다. 왼날개가 아니면 안 된다면서 사납게 구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만, 오늘날 숱한 왼날개를 보면 돈·이름·힘을 거머쥔 이들(기득권)이기 일쑤입니다. 책 좀 읽고 글 좀 쓴다면서 왼날개 자리를 자랑하는 이들이 대단히 많아요. 그런데 그들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수수하게 숲을 사랑하는 살림길인 왼날개는 얼마나 있는가요? 불나방처럼 서울이란 단물을 빨아들이려고 서울바라기로 흐르는 왼날개 글꾼 붓쟁이 몸짓이지 않을까요?


  서울 한켠에서 헌책집을 꾸리는 윤성근 님은 그 책집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으며 ‘달삯쟁이(회사원)를 그만둔 일’이 아름다운 길이었다고 되새깁니다. 달삯쟁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나라는 사람들을 달삯쟁이로만 내몰면서 스스로 삶을 짓고 살림을 사랑하는 길을 꽁꽁 감추거나 짓밟는다는 뜻입니다. 달삯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아이들하고 어깨동무하며 노래하는 살림길을 못 볼 만큼 바빠맞도록 내몬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왼날개도 오른날개도 아닌 ‘그저 날개’를 달면서 날면 됩니다. 이쪽으로 가야 하지 않습니다. 저쪽으로 가야 맞지 않습니다. 그저 ‘삶길·살림길·사랑길’을 봐야지요. 우리는 왼길이나 오른길로 가려고 태어나지 않았어요. 우리는 ‘우리 길’을 가려고 태어났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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