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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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기는 마음빛 (2020.10.22.)
― 서울 〈번역가의 서재〉
보금자리에서 모든 살림을 꾸릴 적에 가장 홀가분하면서 즐거운 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집에서 손수 지어서 누리기에 더없이 기쁘면서 씩씩하게 지낼 만하지 싶어요. 스스로 짓지 못하는 살림이 있으면 이웃하고 나눕니다. 우리가 넉넉히 지은 살림이 있다면 이때에도 이웃하고 나누지요. 우리는 이웃한테, 이웃은 우리한테, 서로서로 상냥하면서 포근한 손길을 잇습니다.
저는 쇠를 만지지 않아요. 그래서 쇠로 이모저모 지은 이웃님한테서 달림이(자전거)를 장만합니다. 제가 장만한 달림이는 혼자 살 적에 저랑 책만 실어 나르는 고마운 발이 되었다면, 곁님하고 두 아이를 낳은 뒤에는 아이들을 태우는 듬직한 다리가 되었어요. 제가 타는 여러 달림이 가운데 몇몇은 너무 닳아 더는 못 타지만, 열여덟 해째 타는 달림이는 꾸준히 손질하면서 여태 멀쩡합니다. 아니, 몸통이랑 손잡이만 멀쩡하고 다른 모든 연모랑 톱니는 몇 벌을 갈았습니다.
고흥에서 이 달림이를 손질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고흥도 순천도 달림이를 제대로 만지는 일꾼을 못 봅니다. 어쩔 길이 없지요. 버스 짐칸에 싣고 서울마실을 합니다. 서울에 있는 단골 자전거집 지기님은 “고흥에 그렇게 사람이 없나? 하기는, 강릉 손님도 꼭 우리 집까지 가져오시더라구요. 여태 강릉이 가장 먼 손님이었는데, 이제 최종규 씨가 가장 먼 손님이 되었네!” 하고 말씀합니다.
두 시간을 손질한 달림이는 잘 나아갑니다. 이 달림이를 타고 〈커피 문희〉에 들러서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십니다. 그리고 조금 더 달려 〈번역가의 서재〉로 마실합니다. 마치 2층처럼 보이는 1층에 있어서 한참 못 찾고 골목을 헤맸습니다. 해 떨어진 저녁이라 더 헤맸을는지 모르지요. 이튿날 아침에 다시 이곳에 와 보니 볕이 무척 잘 들고 환한 자리예요. 서울 한복판에 이러한 골목집이 있고, 이 골목집이 이러한 책집을 품었다니, 창가에 앉아 가만히 하늘바라기를 해도 즐겁겠구나 싶습니다.
이곳 〈번역가의 서재〉는 바깥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시는 분이 가꾸면서 ‘우리말로 옮긴 책’만 건사한다고 합니다. 둘레에 나누고 싶은 여러 나라 책이 있기에 우리말로 기쁘게 옮겨요. 우리말로 옮긴 이웃나라 책은 두 나라가 말로 이어가면서 만나는 길이 됩니다. 저 나라 사람은 저러한 살림으로 하루를 노래하네 하고 돌아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살림으로 오늘을 노래했구나 하고 되새깁니다.
같이 찾고 함께 생각합니다. 같이 누리고 함께 나눕니다. 이웃나라에서 넘실대던 이야기가 새로운 말씨를 만나 새롭게 씨앗을 틔웁니다. 웃음이며 눈물은 쉽게 옮는다고 해요. 노래하고 춤도 쉽게 옮겠지요. 별빛을 서울에 옮겨 놓고 싶습니다.
《연필》(헨리 페트로스키/홍성림 옮김, 서해문집, 20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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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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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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