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들풀길 (2020.10.8.)

― 파주 〈보물섬〉


  여러 해 만에 파주에 갑니다. ‘타이포그래피 배곳 파티’에 찾아가서 ‘멋지기’ 배움길을 걷는 젊은이한테 우리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요즈막에 수수께끼를 풀어낸 ‘눈·비’ 말밑이 우리 삶하고 얽힌 살림길을 이야기합니다. ‘꾸미다·가꾸다·꾸리다·일구다·돋구다’처럼 ‘꾸·구’가 깃들면서 비슷하지만 다른 말씨마다 어떤 숨결인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꾸’가 깃든 낱말은 ‘꾸다·꿈’하고 맞닿는다고, 이는 ‘꾸미다 = 꿈 + 이다’로 풀어내어 새롭게 읽을 수 있다고, ‘꾸민이 = 디자이너’로 다루는 뜻이란 그저 보기좋게 만지는 손길뿐 아니라, 앞으로 새롭게 이루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겉이며 속을 곱게 여미는 길을 나타낸다고 이야기합니다.


  꾸미기에 ‘꾸민이(꾸밈이)’요, 가꾸기에 ‘가꾼이(가꿈이)’입니다.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쉽게 다시 생각하면서 말밑을 하나하나 짚는다면, 아주 수수한 말씨마다 아주 깊고 넓게 생각샘이 흐르는 줄 알아챌 만합니다. 다시 말해서, ‘꾸민이(꾸밈이)’란 “꿈을 짓는 사람”을 나타낸다 할 만하니, 영어 ‘디자이너’를 우리 살림새에 맞게 새로 담아내는 이름이라 하겠지요.


  파주로 오랜만에 걸음하기에 〈이가고서원〉을 가 보자고 생각하다가 틈이 맞갖지 않아 〈보물섬〉만 들릅니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꾸리는 〈보물섬〉인데 곁일꾼만 이곳에 두기보다 ‘책집지기’를 둔다면 책차림새가 확 달라질 텐데 싶어요. 한자말 ‘보물’은 이슬처럼 빛나고 사랑스러운 살림을 나타내요. 이슬같은 책을 이곳에 건사하면서 이웃님하고 나누는 징검돌 같은 책집이 되자면, 그냥그냥 받아들인 묵은책을 그럭저럭 싸게 파는 가게를 넘어, 책 하나마다 숨쉬는 오래면서 새로운 숨빛을 밝히는 노릇을 할 지기가 돌보도록 하면 좋겠어요.


  처음 파주 ‘북시티’가 태어날 무렵만 해도 숲이랑 들을 밀어내고 잿빛집만 가득 올려세워 사납고 차갑고 볼썽사나웠습니다. 어느새 열 해도 지나고 스무 해도 지나니, 곳곳에 들풀이 돋고 나무줄기가 제법 굵습니다. 사람이 살려고 집을 올린다지만, 사람이 살려면 풀꽃나무가 늘 곁에 있어야 해요. 집은 좀 작아도 됩니다. 길은 좀 좁아도 됩니다. 풀밭이 너르면 좋고, 숲길이 깊으면 아름다워요. 들풀에 풀벌레가 또아리를 틀면서 풀노래를 들려준다면 그곳은 바야흐로 ‘시티’ 아닌 ‘마을’로 거듭나면서 제대로 ‘책마을’이 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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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世說》(김훈, 생각의나무, 2002.3.8.)

《테하누》(어슐러 르 귄/최준영·이지연 옮김, 황금가지, 2006.7.24.)

《어느 날 난민》(표명희, 창비, 2018.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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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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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책숲마실 파는곳]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8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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