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우리말을 모르는 번역 : 바깥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 가운데 서울이나 큰고장이 아닌, 시골이나 숲에 깃들어서 삶을 읽고 새기는 일꾼은 얼마쯤 있을까. 풀꽃나무하고 숲을 곁에 두고 마음으로 품으면서 책을 짓거나 엮거나 쓰는 글님이나 일꾼은 몇쯤 있을까. 풀꽃나무를 곁에 두고 마음으로 함께하지 않고서는 풀꽃나무를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못 담는다. 처음 태어나는 글·그림·사진은 언제나 풀꽃나무하고 한마음으로 살아낸 길에서 태어난다. 그런데 이렇게 태어난 글·그림·사진으로 엮는 이가 풀꽃나무를 모르거나 등진 삶이라면? 이렇게 해서 나온 이웃나라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이가 풀꽃나무를 모르거나 등진 살림이라면? 바깥말만 잘 하기에 우리말로 잘 옮기지 않는다. 바깥말만으로는 옮기기를 하지 않는다. 언제나 ‘이 나라 이 땅에서 살아가며 흐르는 말씨’를 읽고 알고 새길 적에 비로소 옮기기를 한다. 더구나 풀꽃나무랑 숲을 다룬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데, 옮긴이 스스로 풀꽃나무하고 숲을 모를 뿐 아니라 생각조차 할 길이 없는 서울 한복판에서 지낸다면? 서울 한켠에 있는 ‘공원’을 드나드는 눈높이로 풀꽃나무를 옮기려 한다면? 우리말을 제대로 몰라서 옮김말이 서툴거나 엉성하거나 뜬금없거나 엉터리이거나 뒤틀리거나 엇갈리는 일도 수두룩하지만, 막상 풀꽃나무하고 숲을 하나도 모르는 채 ‘일감을 받아 옮기기’만 하느라 뭔가 뒤죽박죽이거나 어수선하거나 뜬구름을 잡는 책이 너무한다 싶도록 쏟아진다. 2020.9.2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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