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씨앗책 (2020.9.23)

― 순창 〈책다방 밭〉


  논이랑 밭을 어울러 논밭입니다. 풀이 푸르게 일렁이는 풀밭입니다. 눈송이 소복소복 쌓여 눈밭입니다. 사람이 가득한 곳이라 사람밭입니다. 즐겁게 나누는 이야기로 시끌시끌한 이야기밭입니다. 서로 아끼며 환하게 웃음짓는 사랑밭입니다. 새롭게 지피는 생각을 씨앗으로 묻으며 고요히 깨어나는 마음밭입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으면서 스스로 아름답고 즐거운 길이 되나 하고 새기는 생각밭입니다. 한지붕에서 어깨동무하며 함께 일하고 나누고 쉬고 노래하는 살림밭입니다. 이 온갖 삶을 갈무리하는 글밭입니다. 삶을 갈무리한 글을 이웃하고 널리 나누려고 하는 책밭입니다.


  전북 순창 시골자락에 깃든 〈책다방 밭〉으로 마실할 날을 손꼽다가 ‘책방 하는 농부’라고 하는 누리가게를 알았습니다. 곧바로 순창마실을 하기가 쉽지 않다면, 마음으로 먼저 누리가게를 만나자고 생각하며 누리마실부터 합니다. 요즈음은 다들 자동차를 몰아 하루치기로도 꽤 먼길을 다녀온다지만, 고흥 시골자락에서 순창 시골자락으로 시골버스를 두루 돌고 돌아서 찾아가자면 하루를 꼬박 써야겠지요. 어느새 한가위가 가까운 9월 끝자락은 날마다 무화과알을 조금씩 따서 누리고, 때로는 감알을 따서 누리며, 초피알을 훑어서 말리고, 붓꽃 씨주머니를 따서 나란히 말립니다.


  굵은 모과알을 따서 석석 썰어 달콤가루에 재우다가 생각합니다. 〈책다방 밭〉 ‘씨앗책’을 한 자락 받으면 좋겠어요. 누리가게에 올라온 ‘씨앗책’은 9월 이즈막이나 10월에 심을 만한 씨앗 두 가지에다가 ‘숨은책’ 하나가 꾸러미입니다. 숨은책이란 ‘수수께끼책’입니다. 무엇을 담았는지 미리 알려주지 않는 책이에요. 다만 하나는 틀림없을 테니, 순창 시골자락에서 흙살림을 가꾸는 길에 곁에 두면서 새록새록 반가이 이야기밭이 되는 책일 테지요.


  마당이며 뒤꼍에서 낮에는 나비랑 놀고, 밤에는 반딧불이랑 놉니다. 나무처럼 얌전히 서서 두 팔을 곧게 가지처럼 펴고 서면 나비는 어느새 팔등에 내려앉습니다. 반딧불이도 하늘하늘 푸르고 파랗고 하얗게 반짝이다가 살며시 머리에 내려앉지요.


  풀책(식물도감)이나 벌레책(곤충도감)을 뒤적여야 풀이나 벌레를 알 만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풀을 사귀고 벌레랑 동무하노라면 풀넋이랑 벌레넋을 마음으로 맞아들일 만해요. 앞으로는 어린이도 어른도 글책으로만이 아닌, 삶이며 온몸이며 마음이며 사랑으로 둘레를 마주하면서 지켜보면 좋겠어요. 풀책이나 벌레책에 적힌 이름을 외워도 나쁘지 않지만, 이보다는 스스로 느끼는 결을 헤아려 새롭게 만나면 오래오래 살가이 어울릴 만해요.


  호미질·삽질·낫질·괭이질 소리가 깃든 ‘씨앗책’이 한 톨 두 알 석 자락 넉 꾸러미 고루고루 퍼져 이 땅을 푸르게 물들이기를 바라요. 푸른별에 푸른책입니다.


책다방 밭, 누리가게 https://smartstore.naver.com/batt_sonen90

《정원가의 열두 달》(카렐 차페크 글·요제프 차페크 그림/배경린 옮김, 펜연필독약, 2019).6.2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책숲마실 파는곳]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8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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