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도서관
사전 짓는 책숲 2020.9.7. 《책숲마실》을 내며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저는 달을 안 보고 삽니다. 큰고장에서 살 적에는 으레 달을 보았는데, 별이 안 보이니 달을 보기도 했으나, 밤에 가장 크게 빛난다고 여겨 달을 봤어요. 2011년부터 전남 고흥에서 살며 더는 달을 안 보고 별을 봅니다. 마당에 서서 고개를 들지 않아도 멧자락 둘레로 별이 출렁여요. 고개를 살짝 들면 알록달록하게 빛나며 춤추는 별(아마 UFO일 테지요)이 곳곳에 있습니다.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면 반짝이는 찔레꽃이나 딸기꽃을 흩뿌린 듯이 미리내가 초롱초롱해요. 맨눈으로 밤마다 미리내를 만나니까 달을 볼 까닭이 없어요.
2015년까지는 나라 곳곳 헌책집을 두루 다녔습니다. 그즈음까지는 헌책집이 아니고서는 ‘다 다른 숨결이 흐르는 그 고장 이야기책’을 만날 자리가 없다시피 했어요. 2016년으로 접어들 무렵부터 마을책집(독립책방·독립서점)을 하나둘 찾아갑니다. 바야흐로 마을책집이 새롭게 책빛을 밝혀서 나누는 몫을 다부지게 하거든요.
책집이야 예닐곱 살 무렵부터 심부름으로 다녔을 테지만, 저 스스로 제대로 책에 눈을 뜨면서 책집마실을 다닌 때라면 1991년부터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이때에 ‘책다운 책’을 볼 곳이 인천에는 없다시피 했어요. 구마다 하나씩 있는 공공도서관은 책이 너무 적고 낡았으며 관공서 홍보물하고 베스트셀러 소설책 빼고는 얼마 없더군요. 동무하고 이 도서관 저 도서관을 돌며 으레 그 마을(구)에 있는 책집에 찾아갔습니다. 인천 주안이나 부평에 있던 책집을 자주 드나들었어요. 이러다 1992년에 인천 배다리 헌책집을 만났고, 이 헌책집을 다니던 무렵부터 ‘헌책집(마을책집)을 둘레에 알리는 글’을 썼습니다.
참고서랑 문제집이 아닌 ‘그저 책’을 만나려고 다닌 서른 해인데, 그 서른 해 동안 만난 책집이 즈믄(1000)을 넘어요. 즈믄 곳이 넘는 책집을 다닌 이야기를 미처 다 쓰지 못했습니다만, 또 잊어버린 책집도 수두룩합니다만, 2011년부터 2020년 유월까지 다닌 책집 가운데 140곳 이야기를 추려서 《책숲마실》이란 이름으로 여미었습니다.
우리가 책을 더 많이 읽기보다는 저마다 다른 마을빛을 가꾸는 작은책집에 천천히 녹아들듯 마실을 하면서 우리 마음을 스스로 살찌우는 아름다운 책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마을에서 즐겁게 장만해서 기쁘게 읽는 책을 두 손으로 받아들일 적에는 ‘책을 지은 이웃(작가와 출판사)’하고 ‘책을 나누는 이웃(책집지기)’을 마음으로 사귀면서 어우러지는 길을 새롭게 열리라 생각해요.
책을, 숲을, 마을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푸른별을 책 하나에서 싱그러이 읽고 사랑으로 품기를 바라는 뜻으로 《책숲마실》을 선보입니다.
기쁘게 장만해서 즐겁게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장만하신 분이 저한테 찾아오신다면 기꺼이 그 책에 ‘넉줄글꽃’을 적어 드릴게요.
‘숲노래 책숲(도서관)’ 이웃님한테는 “책숲마실 그림엽서”를 보냅니다. 열세 살 사름벼리 어린이가 그려 주었어요. 틈이 나는 대로 여러 마을책집에 “책숲마실 그림엽서”를 띄우려고 합니다. 혼자 온갖 일을 맡기에 바로바로 못 띄우곤 해요. 집살림을 추스르다가, 아이들하고 놀다가,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들마실이며 숲마실이며 바다마실을 다니다가, 새로 쓰는 사전을 신나게 엮다가 기운이 다 빠져 드러눕다가, 마을 샘터에 낀 물이끼를 치우다가, 빨래를 해서 널고 말리고 개다가 …… 아무튼 부산한 나날입니다.
요즈막에 나라에서 ‘2차 재난지원금’을 준다고 하지요. 저희는 ‘차상위계층’인데, 차상위계층이라 해서 따로 다달이 뭘 받은 일이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 집만 못 받았는지 몰라요. 복지라는 손길이 제대로 닿는 곳도 있을 테지만, 이름만 붙여 준 빈껍데기로 지내는 곳도 꽤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스스로 가난살림이어야 이웃살림을 제대로 헤아린다고는 보지 않아요. 다만, 가난살림을 겪지 않고서 벼슬아치나 정치일꾼이나 글쟁이 노릇을 한다면, 이들 머리나 손발이나 입에서 흐르는 이야기나 길이 슬기롭거나 올바르거나 사랑스럽지는 않구나 싶습니다.
힘없고 이름없고 돈없는 집안 사내는 비무장지대 육군으로 끌려가기 마련입니다. 힘있고 이름있고 돈있는 집안에서는 그들한테 있는 것으로 군대도 뭣도 다 빼돌리거나 비켜 가겠지요. 그러나 가난살림 아들로서 비무장지대 육군을 겪었기에 여느 숱한 이웃 마음을 헤아리는 길이 되더군요. 무엇보다도 이런 군대를 없애고 아름나라를 이룰 때까지는 나라가 온통 다툼판으로 쪼개지겠구나 싶습니다. 《책숲마실》이 뭇이웃님한테 사랑스러운 이야기책으로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책 하나로 마음꽃을 가꾸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빌면서 꾸벅 절을 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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