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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히말라야에게 - 히말라야가 전하는 위로
서윤미 지음, 황수연 그림 / 스토리닷 / 2020년 6월
평점 :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35
《나의 히말라야에게》
서윤미 글
황수연 그림
스토리닷
2020.6.20.
최근에 내가 일하는 곳은 포카라시청이다. 시청에는 외국인이 나 혼자다. 아침에 다른 부서 사람이 나에게 와서 묻는다. “왜 한국에서 네팔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자살하나요?” 순간 나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 이주노동자는 4만여 명에 달한다. (43쪽)
네팔은 1인당 GDP가 1000달러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이며 해외 이주노동자들이 보내는 송금액이 국가 총수익의 28%, 해외에서 보내는 원조자금이 22%를 차지하는 나라다. 해외에 나가 있는 젊은 청년들에게는 투표권이 없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공무원들은 요지부동이다. (70쪽)
뜨겁고 차가운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날들이 이어졌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후 어린 쌍둥이 조카를 데리고 부모님 집으로 내려와 육아를 시작했다. 내 생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없는 일이었다. (165쪽)
길을 걷다 동생을 떠올리며 나는 혼잣말을 곧잘 했다. “동주야, 언니가 여기에 있다. 다시 히말라야를 걷고 있어.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설산을 너도 보고 있을까?” (190쪽)
꽤 많은 사람들이 네팔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 찾아갑니다. 제 나라에는 네팔처럼 아름드리인 멧자락이며 포근한 마을이 없기 때문일 테지요. 제 나라에서 아름드리 멧자락이나 포근한 마을을 누린다면 굳이 네팔을 찾아갈 일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참으로 많은 네팔사람이 제 나라를 떠나 여러 나라로 돈을 벌러 나갑니다. 네팔에 머물며 돈벌이를 찾기 쉽다면 구태여 제 나라를 안 떠날 테지요.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나야 ‘네팔에 없는 돈’을 벌어들일 만하기에 네팔을 떠납니다.
네팔사람이 떠나고서 빈자리에 이웃나라에서 찾아온 사람이 자리를 잡습니다. 이 나라를 떠난 사람들이 남긴 빈자리에 네팔을 비롯한 여러 나라 사람이 찾아와서 자리를 채웁니다. 《나의 히말라야에게》(서윤미, 스토리닷, 2020)는 네팔하고 이 나라 사이에서 ‘내가 나답게 설 곳은 어디일까?’를 스스로 묻고 길을 찾으려고 하는 발자취를 들려줍니다.
우리를 낳은 어버이는 우리더러 ‘우리가 태어나서 자란 곳’에서 ‘어버이가 하는 일’을 고이 물려받고서 즐겁고 사랑스레 살아가도록 이끌거나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태어나서 자란 곳’을 떠나 ‘어버이가 하는 일’은 되도록 멀리하면서 ‘서울이나 서울하고 가까운 큰고장’에서 돈벌이가 될 만한 일을 찾으라고 등을 떠밀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빠 찬스·엄마 찬스’란 말이 떠돕니다. 삶을 사랑하는 슬기로운 숨결을 물려주지 않고서 ‘오직 돈을 돈·이름·힘으로 거머쥐는 얄딱구리한 길’에 기울어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아빠 찬스·엄마 찬스’예요. 참말 그렇지요. 우리나라는 아직 민주나 평등이나 평화나 자유하고 꽤 멀어요. 일제강점기나 군사독재는 벗어났으나 참삶길로 접어들지는 않았어요.
네팔을 떠나는 네팔사람한테서도 이는 매한가지일 테지요. 돈을 벌어야 한대서 네팔을 떠난다지만, 돈으로는 따지거나 셈할 수 없는 길이 있을 텐데, 그 길이 아닌 돈으로 기울기에 네팔을 떠나고 말아요. 《나의 히말라야에게》는 두 나라 사이에서, 아니 두 삶자리 사이에서 어떻게 서야 할까 하고 망설이는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망설이면서도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딛는 줄거리예요. 망설이면서도 한 발짝을 내딛어야 해요. 망설이더라도 밥술을 떠야 해요. 망설이지만 숨을 쉬고 물을 마셔야 해요.
숨을 고른 다음 눈을 들어 멧자락을 바라봅니다. 글쓴님은 하얗게 덮은 히말라야를 눈으로뿐 아니라 마음으로 담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을 읽는 저는 한 해 내내 푸르게 일렁이는 남녘 시골자락 풀꽃나무를 조용히 바라보며 생각에 젖습니다. 하얀바람은 푸른바람하고 만납니다. 두 바람은 하늘바람하고 만납니다. 하늘바람은 바닷바람하고 만납니다. 이윽고 별바람하고 만날 테지요. 어느 자리에 서서 어느 길을 가든, 우리 스스로 빛나는 아름다운 눈망울을 건사하면 좋겠어요.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