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사 애장판 3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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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iUrusibara #蟲師 #むしし #漆原友紀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민주당 정치독


《충사 3》
 우루시바라 유키
 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05.8.15.


  사람이 둘 죽습니다. 한쪽은 때린이인데, 때린짓을 감추려고 죽습니다. 또 한쪽은 맞은이인데, 더 맞고 싶지 않으려고 죽습니다. 때린짓을 감추는 이 곁에는 이 때린짓을 감추어 주는 이들이 물결칩니다. 때린이가 무서워 스스로 죽음길로 간 맞은이는 이 물결치는 주먹질이며 윽박질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여기고 맙니다.


“이 목소리, 무서운 목소리예요. 그래서 망가뜨려 버리려고. 그 동굴에서 이런 목소리가 될 때까지 소리를 질렀어요.” (18쪽)


  “사람은 얼마나 올바른가?” 하고 묻는다면 “글쎄요.” 하고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정치·경제뿐 아니라 사회·문화에다가 교육·종교 모두 매한가지인걸요. 더구나 문학·예술마저 “글쎄요”란 말이 아니고서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정치를 볼까요. 저쪽에서 빈틈이나 잘못을 보이면 후벼파려고 합니다. 이쪽에서 빈틈이나 잘못이 드러나면 입을 씻거나 모르쇠이거나 딴청을 하거나 핑계를 댑니다. 경제를 봐요. 길미하고 돈에 따라 움직입니다. 사회나 문화나 교육이나 문학을 이루는 틀거리도 ‘내 쪽 네 쪽’이기 마련이고, ‘울타리 안팎’을 가릅니다.


“전에 만났을 땐, 아내의 유품이 발견된 시점에서 이미 살아갈 희망을 다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던데.” “지금은 다르오.” (77쪽)


  제넋으로는 사회살이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넋을 버려야 사회살이를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를 비롯해 문학까지, 옳은길이 아닌 ‘시키는 길’에 맞추어 흐릅니다. 옳은길을 바라보려는 이라면 어느새 사회란 곳을 떠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회라는 곳은 틀을 세워서 이 틀을 고분고분 말없이 따를 적에는 떡고물을 주지만, 이 틀을 깨거나 없애어 누구나 스스럼없이 노래하는 아름터가 되기를 꿈꾸는 이를 내치거나 자르거나 괴롭히거든요.

  푸른별에서 사람 곁에 있는 ‘벌레’를 들려주는 《충사 3》(우루시바라 유키/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05)입니다. ‘벌레’란 이름을 붙입니다만, 꼭 벌레라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깨비(도깨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벌레’란 이름을 받은 그 숨결이 ‘사람’을 바라본다면, ‘벌레란 이름인 숨결이 보기에 사람이란 이름인 숨결이야말로 벌레’로 여길 만합니다.


“괴롭더라도 드세요. 내 생명을 당신이 먹어 줄 거라 생각하니, 왠지 죽음도 두렵지 않아요.” (123쪽)


  오늘 우리는 여태 본 적 없는 나라를 봅니다. 때린이가 우쭐거리면서 힘이며 돈이며 이름을 고스란히 거머쥐고 윽박지르는 나라를 봅니다. 왜 ‘정치권력’이라 하겠어요? 맘대로 휘두를 수 있으니 이런 이름입니다. 왜 서울로 몰리도록 나라를 다스리겠어요? 좁아터진 서울로 들어가는 틈바구니에서 사람들 스스로 다툼질을 하도록 판을 벌여 놓아야 군소리도 딴소리도 쑥 들어가거든요.

  정치권력이나 돈이나 이름이 없는 집에서 태어난 사내는 군대살이를 뼈빠지게 할 뿐 아니라, 군대에서 픽 쓰러져 죽곤 합니다. 정치권력에 돈에 이름이 있는 집에서 태어난 사내는, 이등병이어도 탱자탱자할 뿐 아니라, 군인이면서 대학교에도 다닌다지요.

  정치권력을 거머쥔 그들을 똑똑히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내건 ‘정당 이름’이 아닌, 그들이 낱낱이 보여주는 모습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입시지옥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대학교수하고 알음알음 짬짜미로 얼마든지 졸업장 따위야 쉽게 얻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입시지옥은 나몰라라 하면서 나라밖으로 목돈 들여 그들 딸아들을 내보내지요.

  입시지옥이 안 사라지는 까닭을 생각해야 합니다. 입시지옥을 그대로 두어야 ‘이 나라를 이룬 여느 사람들’, 거의 모든 사람들, 바로 우리들이 그 입시지옥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쳐다보느라 권력자 허튼짓을 따지거나 살필 겨를이 없어요. 여느 사람들이 입시지옥에서 헤매 주어야, 여느 집안에서 자라는 어린이·푸름이가 동무를 밟고 올라서는 다툼질에 익숙한 길을 갑니다. 따져야 할 놈은 정치권력이지만, 입시지옥에서 헤매는 사이에 뜬금없이 ‘이웃밟기’에 길든 나머지, 화살을 어느 과녁에 쏘아야 하는가를 잊어버리고 맙니다.


“벼루를 부순다는 건, 아직 이 안에 잠들어 있는 벌레까지 죽이는 짓이잖아.”“음, 그야 그렇지만, 보시오. 벌레에겐 아무 죄도 없어요.” “그리고 이 벼루, 부셔 버리기엔 너무 아름답지 않소? 당신에게도 자기 자식 같은 벼루 아니오?” (177쪽)


  아무리 농약을 친다 한들 풀은 안 죽습니다. 더구나 농약으로 풀을 모조리 죽이려 든다면, 사람도 죽어버리지요. 풀에 친 농약은 언제나 사람한테 고스란히 들어가는걸요. 농약이 사람한테 이바지한다면 구태여 ‘무농약·저농약·친환경·자연농’이란 이름을 붙일 까닭이 없겠지요. 항생제가 사람한테 좋다면 ‘무항생제’란 이름을 굳이 내세울 일이 없겠지요.

  생각하지 않으면 정치권력이 휘두르는 대로 휩쓸립니다. 《충사》는 이 대목을 ‘벌레·벌레잡이’ 사이를 줄거리로 삼아서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이 푸른별에서 사라져야 할 벌레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푸른별에서 파리·모기가 모조리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생각 좀 해야 합니다. 파리·모기를 미워한대서 푸른별이 깨끗해지지 않아요. 외려 파리·모기가 사라지면 이 별은 끔찍한 쓰레기판이 되어 버립니다.

  지렁이가 징그럽나요? 그대한테 징그러운 지렁이가 없으면 그대는 밥을 굶어야 합니다. 벌레가 싫고 거미가 무서운가요? 벌레나 거미가 없으면 ‘사람이 세운 모든 문명’은 하루아침에 무너집니다.


“존재방식은 다르지만, 단절된 존재는 아니야. 우리 생명의 다른 형태지.” (195쪽)

“두려움이나 분노가 눈을 가리도록 놔두지 말아. 모두 각자의 존재방식대로 존재하는 것뿐. 피할 수 있는 것은, 지혜를 가진 우리가 알아서 피하면 돼. 충사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 방법을 찾아 헤매온 자들이란다.” (215쪽)


  나무가 없는, 게다가 시늉으로 심은 나무조차 함부로 가지치기를 해버리는, 그런 메마른 큰고장에서는 바람이 매캐합니다. 한밤에 별빛 아닌 전깃불빛이 가득한 큰고장에서는 사람들이 언제나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무시무시하게 떠돈다고 하는 요즈막 돌림앓이를 생각해 보셔요. 나무가 우거지고 숲이 아름다운 터전에서 그 돌림앓이에 걸린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지요?

  학교를 제대로 열고 싶다면, 꽉 막힌 시멘트집이 아니라, 탁 트인 숲이나 들에 열 노릇입니다. 사회를 이루고 큰고장이 살기 좋도록 하자면, 찻길을 확 줄이고 자동차가 확 없애면서, 그 자리에 나무를 줄줄이 심고, 10층이 넘는 집은 모조리 치우면서 숲을 가꿀 노릇입니다. 좁은 터에 사람들이 우글우글할 수밖에 없는 판으로 키워 놓고서, 이런 곳에서 돌림앓이가 안 퍼지기를 바란다면, 그야말로 엉터리가 아닌가요? 나라 곳곳이 고르게 흐르도록 살림을 가꾸지 않으니 돌림앓이뿐 아니라 입시지옥에 갖가지 썩어문드러진 짓이 잇따르지 않나요?

  한두 정치무리한테 너무나 커다란 힘을 얹어 주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요? 우리는 이 막짓을 오늘 코앞에서 하나하나 마주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를 나무란 그들이 ‘민주당 정치독재’를 한가득 펼쳐 보이는 요즈음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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