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 줘도 될까 (2013.5.5.)

― 서울 〈문화당서점〉


  역사는 학자만 캐낼 수 있을까요. 학자끼리 캐내는 역사란 어떤 이야기가 될까 요. 문화·교육·예술·사회·정치는 전문가만 해내는가 궁금합니다. 전문가끼리 벌이는 일은 어떤 이야기로 이을 만할까요. 오래오래 헌책집을 돌본 일꾼은 학자도 전문가도 글잡이도 아닙니다. 그런데 헌책집에서 다루는 책은 교과서·참고서·잡지를 비롯해 온나라를 넘나드는 깊고 너른 이야기를 담습니다. 헌책집지기는 ‘책을 읽을 틈’이 모자랍니다. 묻히거나 버려진 책을 캐내어 손질하고 닦은 다음에 책시렁에 놓기 바쁩니다. 다 다른 갈래에서 다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마주하면서 다 다른 책을 알맞게 알려주고 이어줍니다. 참고서랑 인문책에, 어른책이랑 어린이책을 다루고, 한글책 일본책 한문책 영어책 숱한 나라밖 책도 나란히 다루지요.


  헌책집지기 가운데 대학교나 대학원을 다닌 이는 손에 꼽도록 드뭅니다. 학교 문턱을 안 밟거나 짧게 디딘 분이 수두룩합니다. 그저 책집에서 일하고 책을 만지며 스스로 찾아내고 알아내어 밝히고 깨달아 모든 알음알이를 둘레에 스스럼없이 나누는 헌책집지기라고 느껴요.


  〈문화당서점〉 지기님은 “그렇게 많은 책을 다루고 팔았는데도 아직 처음 보는 책이 많아요. 그런데 간혹 ‘내가 책을 좀 안다’고 말하는 분이 있더구만. ‘책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백만 권이 아닌 천만 권을 읽었더라도 그보다 훨씬 많은 책이 있는데 어떻게 ‘책을 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우리는 다 ‘책을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 학자님이 ‘책을 안다’면 굳이 뭣하러 우리 책방에 와서 책을 사가야겠어요? ‘책을 안다’면 이제 그만 봐야지. 책방에 온다는 소리는 ‘아직 책을 모른다’는 뜻이에요. 아직 책을 모르기에 더 겸손해야 하고, 책방에 오는 분들은 더 고맙게 배우려는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최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고 으레 말길을 엽니다.


  〈문화당서점〉 지기님한테 아들뻘인 저한테 꼬박꼬박 ‘최 선생’이라 하면서 ‘책을 얕보면서 책을 안다’고 말하는 학자·전문가·지식인·교수 손님이 아쉽다고 이야기하셔요. “다 그분들이 필요해서 헌책방까지 와서 귀한 책을 사가는데 아무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아요. 다들 ‘왜 이리 비싸냐’ 하는 말부터 해요. 배운 분들이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최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랜책, 새책, 어린이책, 한문책, 영어책, 일본책, 문학책, 인문책, 사진책, 그림책을 고루 다루며 알찬 이곳에 찾아오면 쌈짓돈까지 헐고야 맙니다.


  “내가 최 선생한테 책을 너무 많이 팔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그래도 좋은 책을 가져가시면 나도 기분이 좋지.” 두 아이를 보시더니 “애들한테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 줘도 될까? 그런데 어린이날에 아이를 헌책방에 데리고 다니는 아버지가 있나? 허허.” 하십니다. 아이들하고 누릴 동화책·그림책을 한 꾸러미 고릅니다. 제가 볼 책은 몇 가지만 가볍게.


《심술북》(이정문, 송우출판사, 1993)

《기린 울음》(고영서, 삶이보이는창, 2007)

《사랑할 것이 많이 남았는데》(4·26창작단, 힘, 1992)

《슬픈 날》(이기주, 내일을여는책, 1995)

《MASK, UNMASK》(전경애, 비봉출판사, 2010)

《無花果の木の下で》(嶋 行比古, 美術出版社, 1998)


* 알라딘 중고샵이 연신내역 앞에 들어선 이듬달, 〈문화당서점〉 지기님은 가게를 접으셨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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