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냇물소리가 가만가만 (2020.6.25.)

― 대전 〈책방 채움〉


  나라에 크고작은 책집이 만 곳이 훌쩍 넘던 때가 있습니다. 학교 앞에서 문방구이면서 책집이던 곳도 많았습니다만, ‘문방구이자 책집’이라기보다는 ‘문방구 곁에 책을 몇 자락 놓으’면서 늘 책을 새롭게 마주하도록 마음을 쓴 살림이지 싶습니다. 예전 ‘학교 앞 문방구 책집’은 책을 얼마 못 두기에 ‘잘 팔릴 책’을 으레 놓기도 하지만 ‘잘 읽힐 책’을 곧잘 놓곤 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책을 놓는 학교 앞 책집이 있으나, 널리 읽히면 좋겠다고 여긴 책을 문방구지기가 가려내어 갖춘달까요.


  제가 어릴 적부터 으레 다닌 책집은 큰책집이 아닌 마을책집이거나 ‘문방구책집’입니다. 어머니가 “네가 보고서 부록 좋은 (여성)잡지를 골라 와” 하고 심부름을 맡기면 한 손에 종이돈이랑 쇠돈을 움켜쥐고 바람처럼 달려서 휭휭 돌아올 만큼 가까운 곳을 드나들었습니다.


  참고서하고 교과서가 빠진 마을책집에는 여성잡지나 갖은 이레책·달책도 빠집니다. 그렇다고 달책을 아예 안 놓는 마을책집이 아니에요. 책집지기 스스로 가리고 추리고 솎고 뽑아서 갖추는 몇 가지 달책이 있습니다. 2000년대 첫무렵까지 그토록 많던 책집은 도매상에서 밀어넣는 잡지나 책이 수북했다면, 오늘날 책집은 책집지기가 눈썰미를 키워서 가려내어 마을이웃하고 함께 읽으면서 생각을 나누고픈 책이 아기자기합니다.


  대전마실을 하려고 순천으로 가서 기차를 탑니다. 서대전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고, 한참을 달려 〈책방 채움〉을 만납니다. ‘비움’이 있기에 ‘채움’이 있을 테지요. ‘채움’을 지나 ‘만남’에 닿고, 이윽고 ‘누림’이며 ‘나눔’으로 뻗으리라 생각해요. 손바닥쉼터가 곁에 있고, 냇물이 옆에 있습니다. 가까운 동산은 나무가 꽤 우거집니다. 타박타박 걷는 발소리가 조용히 스미는 책집에는 이 고장이 싱그럽게 피어나기를 바라는 그림책이며 동화책이며 이야기책이 곱게 자리를 잡습니다. 이곳에서 산 책을 냇물소리를 들으며 나무그늘에서 읽으면 좋겠네요. 또는 냇가에서 놀다가 책집으로 마실을 올 만합니다. 또는 나무그늘에서 낮잠을 늘어지게 누리고서 책집 나들이를 해도 재미있을 만합니다.


  옆동산에서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 책집에서 살짝 바람이 피어나 옆동산으로 갑니다. 냇물 따라 싱그러운 빛이 흐릅니다. 이 책집에서 슬쩍 자라난 이야기가 냇물에 가만히 안겨서 나란히 흐릅니다.


《플로라 플로라, 꽃 사이를 거닐다》(시부사와 다쓰히코/정수윤 옮김, 늦여름, 2019)

《수학에 빠진 아이》(미겔 탕코/김세실 옮김, 나는별, 2020)

《우아한 계절》(나탈리 베로 글·미카엘 카이유 그림/이세진 옮김, 보림, 2020)


― 대전 〈책방 채움〉

대전 유성구 반석동로40번길 92-14, 102호

https://blog.naver.com/supershin33

https://www.instagram.com/bookstore_chaeum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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