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 - 자연과 나눈 대화
캐슬린 제이미 지음, 장호연 옮김 / 에이도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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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숲책 읽기 161 - 눈길이 닿는 곳에서 피어난 삶길


《시선들》

 캐슬린 제이미

 장호연 옮김

 에이도스

 2016.12.15.



조용히 해,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침묵을 들어. 큰까마귀에게서 잠시 눈을 뗐고, 다시 보았을 때는 녀석이 사라지고 없었다. (15쪽)


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바로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초록색 오로라를 입속에 넣으면 혀에서 거품이 탁 터지면서 크렘 데 멘테의 맛이 날 것 같다는 것이다. (25쪽)


애 키우는 시절은 끝났다. 내 아들은 이제 휴대폰을 갖고 농담을 할 만큼 컸다. 나중에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범고래 다섯 마리 보았음!” 그는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하루 일한 것치고 나쁘지 않네!” (97쪽)


매년 2월 셋째 주만 되면 빛이 돌아왔음을 실감하게 되는 날이 있다. 하루로 그칠 때도 있고, 며칠 이어질 때가 더 많다. (107쪽)


“고래 본 적 있어요?” 내가 마리엘레에게 물었다. “살아 있는 고래 말이에요.” “아니요! 우리들 중 누구도 보지 못했어요. 안 그래도 며칠 전에 그 이야기를 했어요. 하루 종일 여기(박물관)서 (박제나 뼈로 남은) 고래를 대하면서…….” (136쪽)


“그들(군인)은 마을을 불도저로 밀려고 그곳에 도로를 건설했어요. 당신도 그들의 심중을 짐작하겠죠. 더 이상 아무도 그곳에 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결국은 계획이 꺾였군요.” “그리고 이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고요.” (166쪽)


“어때요?” “나쁘지 않아요.” “뭐 하고 있었어요?” “그냥 구경했어요.” “그리고?” “세가락갈매기가 새끼를 낳았더군요. 가끔 두 마리도 보이고.” “괜찮네요.” (205쪽)



  큰아이를 낳고서 곁님이 저한테 들려준 숱한 말 가운데 하나는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해요.”입니다. 이 말은 달리 나타내자면 ‘아이 생각날개를 꺾지 말자’입니다.


  작은아이를 낳고서 곁님 말을 언제나 되새깁니다. 두 갈래로 다 생각하지요. 처음에는 ‘생각날개를 꺾지 말자’고 생각하는데, ‘꺾지 말자’는 생각을 하면 아무래도 ‘이렇게 하면 꺾는 셈 아닌가?’ 쪽으로 흐르더군요. 바로 멈추고서 다시 생각합니다. ‘꺾지 말자고 생각하니 자꾸 꺾는 쪽으로 가는구나 싶네. 그래, 생각날개를 마음껏 펴도록 북돋우고 이야기하는 길로 가자’ 하고요. 이처럼 생각하며 “언제나 모두 너희 마음에 있단다. 너희가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알아내지 못하겠다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알려줄 수 있는데, 아버지나 어머니는 아버지랑 어머니 스스로 오래도록 생각하고 찾아본 끝에 알아낸 길일 뿐이야. 옳거나 맞는 길이 아닌, 그저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살아오며 스스로 배운 길이거든. 그러니까 너희가 무엇을 생각해서 알아내고 보고 깨닫더라도, 너희가 스스로 찾아내고 생각하면 돼. 틀리거나 맞거나 따지지 않아도 돼. 틀렸으면 어떠니? ‘어라, 틀렸네?’ 하고 여기고서 지나가면 되지. 너희 마음으로 생각을 하면 다 알아낼 수 있어.” 하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물어보기에 이렇게 대꾸를 하느냐 하면, “아버지, 별은 왜 떠요?”라든지 “아버지, 이 꽃은 이름이 뭐야?”라든지 “아버지, 이 풀 먹어도 돼?”라든지 “아버지, 저 새가 뭐라고 얘기했어?”라든지 “아버지, 저 길고양이가 아프데? 배고프데?”라든지 “아버지, 여름은 왜 덥고 겨울은 왜 추워?”라든지 “아버지, 제비는 어떻게 저렇게 잘 날까?”처럼 묻거든요. 이제는 언제나 “응, 궁금하구나. 넌 어떻게 생각해?” 하고 되묻습니다.


  영어로는 ‘sightlines’란 이름으로 나온 《시선들》(캐슬린 제이미/장호연 옮김, 에이도스, 2016)을 읽었습니다. 영어로는 ‘-s’를 붙일 테지만, 한국말로는 ‘-들’을 안 붙입니다. 한국말로는 목소리면 ‘목소리’요, 노래이면 ‘노래’요, 글이면 ‘글’이요, 눈길이면 ‘눈길’이에요.


  눈길이란, 눈으로 짓는 길입니다. 눈길이란, 눈으로 가는 나아가는 뻗어가는 지나가는 거쳐가는 길입니다. 눈길이란, 눈으로 마주하는 길입니다. 눈길이란, 이 눈하고 저 눈이 어우러지는 길이지요.


  글쓴님이 이녁 아이하고 주고받은 말처럼, 저도 아이들하고 수수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수컷 직박구리가 잠자리를 잡고서 암컷 직박구리한테 다가가더라.” “그래? 둘이 뭘 했어?” “암컷 직박구리는 수컷 직박구리를 안 쳐다보데.” “왜?” “응, 딴 데 보느라고.” “이러다가 수컷이 자꾸 뒤에 붙는다고 여겨 귀찮아 하다가 돌아보니, 어라 수컷 직박구리 입에 잠자리가 있잖아?” “그래서?” “암컷 직박구리가 수컷 직박구리더러 ‘응? 나 주려고 불렀구나?’ 했지.” “그리고?” “그런데 암컷 직박구리가 저를 한참 안 쳐다보고 딴청만 했다고 토라져서 날름 삼키고 날아가더라.” “하하하.” “암컷 직박구리가 따라 날아가면서 ‘너, 나 놀리는구나!’ 하면서 끄악끄악대고.”


  우리는 모두 아기로 태어나 아이로 자라나며 푸른 눈망울로 꿈을 키우고는 어른이라는 자리에 서서 철이 듭니다. 《시선들》은 이러한 삶길 한켠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마음에 담는 사람으로 오늘 이곳에 있는가 하고 찬찬히 짚는구나 싶습니다.


  자, 오늘 우리는 무엇을 보았나요? 새벽을 맞이하면서, 아침을 열면서, 낮에 해가 하늘 높이 뜨는 동안, 차츰차츰 기우는 해가 고개 너머로 사라질 무렵, 바야흐로 깜깜한 밤을 맞이한 때에,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가요? 그리고 이렇게 바라본 눈썰미로 아이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요?


  지식이나 정보도 대수롭다고 여깁니다만, 지식이나 정보만으로는 가르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책이나 교과서나 학교만으로는 아이들이 슬기롭거나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거나 즐겁게 피어나는 길을 알려주지는 못하겠다고 느낍니다. 지식이며 정보이며 책이며 학교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아이가 스스로 생각에 날개를 달고서 마음을 틔우는 눈길이 되어 사랑으로 삶을 짓는 길을 북돋울 적에 참으로 즐거운 배움살림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 살림살이는 돈만 넉넉하다고 해서 즐거웁지 않아요. 간장 종지 하나 덩그러니 놓은 밥자리라 하더라도, 이야기꽃이 활짝 피어나도록 둘러앉았으면, 배부르고 즐거우며 아름답기 마련입니다. 갖은 잔치밥을 차린 자리라 하더라도, 으스스하거나 무섭거나 닦달이 판친다면, 속이 더부룩하고 아무 맛도 없기 마련이에요.


  어른으로서 어떤 눈길인지 같이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사람으로서 어떤 마음길인지 함께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풀꽃나무하고 매한가지인 이 푸른별 아름다운 숨결로서 어떤 사랑길인지 나란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눈길이 빛나는 꽃길이 되도록 하루를 가꾸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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