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쪽빛책뜰 (2020.6.9.)

― 부산 〈인디고서원〉


부산 수영구 수영로408번길 28

051.628.2897.

www.indigoground.net



  사전짓기라는 길을 가지 않았다면 그저 숲에서 조촐하게 하루를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때에는 나무를 읽고 풀을 읽고 하늘을 읽고 바람을 읽다가 노래를 부르면서 맨발에 맨손으로 숲을 누비고 살겠네 싶어요. 사전짓기를 하는 터라 숲 곁에서 지내면서도 큰고장으로 책집마실을 다닙니다. 사전이라는 책에 담을 말을 살펴야 하고, 사람들이 아직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 그냥그냥 쓰는 숱한 말을 ‘풀이하거나 풀어내어 다루’어야 하거든요. 요즈막에 ‘자살당하다’란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뭔 소리인가 갸우뚱했는데 ‘자살이 되도록 몰렸다’라든지 ‘자살로 보이도록 시달렸다’는 뜻이더군요.


  한국은 ‘어린이·푸름이 자살률’이 무척 높습니다. 어르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일쑤입니다만 꽃피울 겨를이 없이 꺾이는 어린이·푸름이는 자꾸 늘어납니다. 돌림앓이를 둘러싸고서 아직도 교육부에서는 ‘교과서 진도+대학입시’만 바라봅니다. 왜 아이들을 시멘트덩이에 밀어넣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이 숲을 껴안는 길로 가도록 이끌지 않을까요. 왜 아이들을 대학교에 보내려 할까요. 왜 아이들 스스로 꿈을 지어 사랑을 가꾸도록 몸소 보여주면서 즐겁게 가르치고 함께 배우는 살림하고는 등질까요.


  엊저녁에 남천역 둘레 길손집에 묵었습니다. 아침 일찍 〈인디고서원〉으로 찾아갈 생각으로 가까운 길손집에서 묵는데, 참 잘못 생각했더군요. 이곳에서 광안리란 곳이 가깝다고 하네요. 관광지인 바닷가에는 갈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기에 광안리가 어디 있는 줄 모르고 살았으니, ‘관광지하고 가까운 길손집’이라며 비싸게 부른 값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햇볕을 머금으면서 걷습니다. 아침 열 시가 안 되어 바깥에서 골목새 노래를 들으면서 동시를 씁니다. 이윽고 열 시를 넘고, 드디어 〈인디고서원〉 안쪽을 들여다봅니다. 손으로 찍은 벽돌로 칸칸이 쌓아올린 이 터전은 즈믄해를 바라보면서 지었다고 합니다. ‘즈믄책집’이로군요. 웬만한 나무는 으레 즈믄해를 삽니다. 이웃나라에는 여러 즈믄해를 살아낸 나무가 꽤 있어요. 한국은 숱한 싸움질하고 삽질 탓에 즈믄나무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고흥읍에는 즈믄살 가까운 우람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만, 고흥군청은 이 나무를 돌보거나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아요. 몇 해 앞서는 굵다란 가지를 함부로 쳐내고서 옆에 정자를 들여놓기까지 했습니다. 즈믄살 가까운 고흥읍 우람나무 둘레에 잔뜩 떨어진 담배꽁초하고 술병이란 슬프기까지 합니다.


  바깥에서 보면 나무걸상이 있고 꽃그릇을 놓은 느긋한 살림집 같은 〈인디고서원〉인데, 안으로 깃들면 알뜰살뜰 여민 어린이책이 1층에, 요모조모 꾸린 푸른책이 2층에 있습니다. 1층에서 2층으로 가는 길목에는 높이 솟은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고, 2층에서 문득 창밖을 내다보면 질경이가 함초롬한 마당이 있어요.


  푸름이를 아끼는 손길로 돌보는 마을책집에 멧새가 깃들어 마을새가 됩니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이는 차츰차츰 철이 들면서 마을지기가 될 테지요. 이 마을지기 푸름이가 한 올 두 올 엮는 이야기는 어느새 마을책이 될 테고요. 질경이 곁에 흰민들레가 어깨동무하면 참 곱겠구나 생각합니다. 고흥에 돌아가면 올해에 훑은 흰민들레씨를 이곳에 보내야겠어요.


  쪽빛인 책뜰을 돌아보다가 《세실의 전설》(브렌트 스타펠캄프/남종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8)이 눈에 박힙니다. 《인디고서원, 내 청춘의 오아시스》(아람샘과 인디고 아이들, 궁리, 2018)는 오늘 여기를 일군 땀방울, 또는 사랑방울이 어떻게 출렁출렁 흐르면서 냇물이 되었는가를 다루었지 싶습니다.


  하늘을 담아 새파란 바다는 쪽빛입니다. 가없이 맑은 하늘처럼 그지없이 싱그러운 물빛은 ‘빛깔없음(투명)’이 아닌 ‘파랑’이지요. 새삼스럽지만, ‘쪽빛책뜰’이란, 이 책집을 드나들 어린이하고 푸름이뿐 아니라 어른들 마음에 어떤 빛깔이 물들면서 생각을 새롭게 씨앗으로 묻으며 아름다이 피어날 만한가 하고 살며시 귀띔하는 터전이지 싶어요.


  그나저나 부산시는 이곳에 여태 ‘훈장’을 안 주었다니 놀랍습니다. 부산시에서 알아보는 눈썰미가 얕은 나머지, 아니 아직 부산시에는 쪽빛마음이 옅은 탓에, ‘보람’을 어떻게 나누는가를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부산이란 고장에서 벼슬아치(공무원)가 되는 이들이, 또 교사로 첫발을 떼는 분들이, 《인디고서원, 내 청춘의 오아시스》를 길잡이책으로 읽고서 일밭을 일구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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