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그림을 남기는 그림책집 (2020.2.8.)


― 전남 순천 〈도그책방〉

전남 순천시 도서관길 15

061.754.1687

http://dogbookshop.blog.me



  지난걸음에는 작은아이하고 다녀온 〈도그책방〉에 오늘은 큰아이하고 다녀오기로 합니다. 나날이 쑥쑥 자라나는 두 아이들 옷가지를 장만할 생각으로 순천마실을 더러 하는 터라, 이렇게 저자마실을 하고서 다리를 쉬려고 마을책집에 들릅니다. 그런데 이날이 큰보름이라는군요. 설도 한가위도 태어난날도 안 챙기니 큰보름을 챙길 일이 없는 터라, 꽤 오랜만에 부럼을 깹니다.


  우리 집은 텔레비전을 안 키웁니다. 자가용도 농약도 비료도 농기계도 안 키웁니다. 이모저모 안 키우는 세간이 많다 보니 둘레에서 으레 “아니, 텔레비전을 안 본다구요? 아니, 텔레비전이 집에 없다고요? 어떻게 텔레비전을 안 보고 살아요?” 하고 묻습니다. 텔레비전 안 키운 지는 까마득해서 “아니, 아직도 텔레비전을 키우신다구요? 아니, 나무를 키우실 노릇이지, 뭣하러 텔레비전을 키우세요?” 하고 되묻습니다.


  마을길을 걸어서 찾아가는 〈도그책방〉에서 다리를 쉬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책살림을 사랑하는 분이 가꾸는 아름다운 책집에 텔레비전을 들여놓은 분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고 말이지요. 설마 있을까요? 가끔은 텔레비전도 봐줘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만, 정 뭘 보고 싶으면 셈틀을 켜서 누리바다에서 살피면 돼요. 끝없는 광고에 연속극에 연예인 말잔치에 사건·사고·정치 얘기랑 스포츠만 넘치는 텔레비전을 키우다가는 그만 우리 넋이 헝클어지지 싶어요.


  텔레비전 풀그림이 알찬 책을 알려주기도 한다지만, 우리 손에 쥘 책은 스스로 책집마실을 하면서 차근차근 헤아리면 넉넉하다고 느껴요. 전문가 눈길 아닌 책사랑이 손길을 타는 책 몇 자락을 틈틈이 마을책집에서 품으면 즐겁습니다.


  큰아이가 고른 그림책은 《편지 받는 딱새》(권오준 글·김소라 그림, 봄봄, 2019)입니다. 저는 《화분을 키워 주세요》(진 자이언 글·마거릿 블로이 그레이엄 그림/공경희 옮김, 웅진주니어, 2001)를 고릅니다. 하나를 더 고르려고 살피다가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김서령, 푸른역사, 2019)를 집습니다. 너무 멋부린 말씨가 거북하지만, ‘배추구이’라 하면 ‘배추지짐’이 떠올라요. 이제 가게를 접은 헌책집으로 서울 연신내 〈문화당서점〉이 있는데, 〈문화당서점〉 아저씨는 곧잘 배추지짐을 해서 새참으로 삼았고, 책손한테 한 젓가락씩 나누어 주시곤 했어요. 헌책집 아재가 들려준 “배추지짐을 모르시나? 우리 경상도에서는 자주 해먹는데. 아무 양념을 안 하고 그냥 배추를 지지기만 해도 얼마나 맛나는지 몰라. 책만 보지 마시고 한 점 드셔 보시오. 드셔 봐야 알지. 아, 그런데 배추지짐을 드시려면 막걸리가 있어야 하나? 내가 술을 안 먹어서 말이지, 막걸리하고 같이 드시고 싶으면, 내, 막걸리도 사다 드리지.” 같은 말은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이 그림책 저 그림책 꼼꼼히 보던 큰아이는 어느새 빛연필을 꺼내어 척척 그림을 그립니다. 책집 아주머니가 건네는 떡을 먹고서, 또 여러모로 이 아름드리 책터를 누리고서, 큰아이 나름대로 한 가지를 책집 아주머니한테 드리려고 생각했구나 싶습니다. 파란 빛깔로 새랑 꽃이랑 바람이랑 깃털을 그리는데 더없이 눈부십니다. 큰아이가 오늘 이곳에서 그린 이 그림은 이 마을책집이 이곳을 찾아오는 책손하고 나눈 마음빛깔이겠지요. 그림책을 실컷 누리고서 그림을 남깁니다. 저는 새로 쓴 노래꽃 한 자락을 나란히 남깁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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