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4.24.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김륭 글, 문학동네, 2012.6.25.



뽕나무 굵은 가지를 하나 친다. 한 손으로 척 쥘 만한 두께인데 막상 들고 보니 묵직하다. 얼핏 그리 안 굵어 보여도 나뭇가지란 얼마나 속이 찬 숨결인가. 이웃집에서 뽕나무 가지묻이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마침 뽕나무 가지 하나가 옆집 울타리로 넘어가도록 자란 터라 쳤다. 가지치기에 앞서, 가지치기를 하고서, 뽕나무를 안고서 “고마워, 사랑해.” 하고 속삭이고 토닥였다. 가지에 돋은 뽕싹을 어찌할까 하다가 두 줌은 나물로 삼고 나머지는 햇볕에 말린다. 덖지 않는 해말림 뽕잎차로 건사할 생각이다.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를 읽었는데 퍽 따분했다. 온통 겉도는 말을 폈구나 싶더라. 이처럼 마음이 드러나지 않는 치레질이어야 시가 될까? 이런 치레말을 척척 묶어야 시집이 될까? 이런 치레글을 꾸러미로 삼아 ‘무슨 시선’이란 이름을 붙이면 그럴듯해 보이기는 해도 알맹이가 너무 없구나 싶다. 살구나무에서는 살구빛이 퍼진다. 살구비누는 살구알을 흉내낸 껍데기이다. 뭐, 껍데기를 번듯하게 꾸며서 으리으리한 시집으로 여미는 일이 나쁘지는 않다. 다만 이러한 겉글은, 겉발림글은, 빈글은, 빈책은,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지 않다. 나무를 품고서 나무를 사랑으로 노래하는 마음일 적에 비로소 아이한테 물려주련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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