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이토록 사랑스런 마을책집을 (2018.1.7.)

― 경북 구미 〈삼일문고〉 

054.453.0031.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시장로 6

https://www.instagram.com/samilbooks



  2011년에 전남 고흥으로 옮겨서 전라사람으로 살아가지만, 고흥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뿐 아니라, 전라도를 통틀어 아는 이웃조차 없다시피 했습니다. 이와 달리 경상도에는 아는 사람이 여럿 있고, 경상도 이웃님을 만나러 곧잘 나들이를 다녀오곤 했습니다. 청도에서 나고 자란 다음 대구에서 길잡님으로 일하는 분이 있어 이분을 만나러 대구마실을 하는 김에 구미마실을 같이하기로 했습니다. 구미에 〈삼일문고〉라고 하는 아름다운 마을책집이 새롭게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꼭 찾아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이 얘기를 대구 이웃님한테 들려주었더니 “그럼 같이 가 보시게요.” 하셔서 대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기차를 탔습니다. “대구서 구미는 기차로 코 닿을 길 아입니까. 뭐, 기차에 타서 자리에 앉자마자 곧 내린달까요.” 이내 기차에서 내리고, 기차나루부터 책집까지 걸어갑니다. 가는 길에는 옷집이 가득하고, 옷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엄청납니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사라진다 싶으니 조용한 마을길입니다. 어쩐지 책집이라면 북새통 옷집거리보다는 조용한 마을자리가 어울리지 싶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들락거릴 복닥판보다는 더 느긋이 깃들면서 마음을 헤아릴 이야기를 누릴 쉼터가 어울리지 싶어요.


  그동안 이웃님 누리집에서 사진으로 보던 〈삼일문고〉 알림판을 눈앞에서 마주합니다. 붉은돌을 촘촘히 올린 바깥이며, 밀며 들어가는 커다란 유리 미닫이가 남다릅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알맞게 어둡습니다. 책꽂이 높이는 어린이한테도 어른한테도 알맞춤합니다. 책을 빼곡하게 꽂지 않았으며, 똑같은 책을 수북하게 쌓는 갖춤새가 없습니다. 구미사람이 쓴 책을 잘 보이는 자리에 곱게 건사해 놓고, 갈래마다 알뜰살뜰 알차게 책꽂이를 꾸며 놓습니다. 곳곳에 걸상이 있기도 하지만, 골마루가 워낙 정갈해서 맨바닥에 앉아서 책을 살펴도 좋겠다고 느낍니다. 아래칸으로 내려가는 디딤판도 좋고, 어린이책을 놓은 자리는 아이들이 마음껏 바닥에 앉아서 눈을 끄는 책을 살피도록 헤아렸구나 싶습니다. 만화책을 놓은 자리 옆에는 크고 야무진 나무책상에 나무걸상이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멋진 나무책걸상이라니, 오랜만에 만납니다. 따로 팔지는 않으나 〈삼일문고〉로 오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새책집에 깃든 만화 도서관’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삼일문고 만화 도서관’은 부피로만 채우지 않았습니다. 책집지기 스스로 만화라는 책을 사랑하는 손길로 꼼꼼히 가린 자취를 물씬 느낄 만합니다.


  아마 예닐곱 살에 처음 마을책집에 형 심부름으로 만화책을 사러 다녀왔을 텐데, 마흔 해 즈음 얼추 즈믄 곳이 될 이 나라 마을책집을 돌아본 나날을 돌아보니, 〈삼일문고〉는 여태 다닌 마을책집 가운데 으뜸으로 꼽을 만합니다. 어느 마을책집이 책을 사랑으로 읽고 건사하지 않겠느냐만, 책꽂이에 골마루에 불빛에 책걸상에 책집일꾼에 미닫이에 알림글에 …… 자잘한 구석까지 아낌없이 가꾼 매무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합니다.


  그림책 《노랑나비랑 나랑》(백지혜, 보림, 2017)을 구경합니다. 《신기한 우산가게》(미야니시 다쓰야/김수희 옮김, 미래아이, 2017)도 구경합니다. 두 가지 그림책은 고흥에서 아버지를 기다릴 아이들한테 건넬 생각입니다. 《파란 만쥬의 숲 4》(이와오카 히사에/ 옮김, 미우, 2017)은 오늘 이곳에서 장만하자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김옥수 옮김, 비꽃, 2017)도 찬찬히 읽자고 생각하면서 고릅니다. 이 소설책을 건사한 마을책집이라니, 참말로 눈썰미가 훌륭합니다. 〈삼일문고〉에 온 김에 만화책을 하나 더 고르자고 생각하며 《오늘도 핸드메이드! 1》(소영, 비아북, 2017)를 집습니다. 줄거리를 ‘좋아하는 짝꿍 찾기’에 너무 맞추려고 하는 대목하고, 부러 영어를 더 쓰며 멋부리는 대목이 아쉽습니다만, 요즘 한국 만화치고 볼 만하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하루를 같이 보낸 대구 이웃님이 한 마디 합니다. “이야, 대구에 이런 책집이 있으면 날마다 올 텐데 말입니다. 아, 구미사람 좋겠네.” “이곳은 구미사람한테 가장 좋겠지만, 아마 나라 곳곳에서 이 마을책집 때문에 구미로 찾아오지 않을까요? 구미시장 되시는 분은 〈삼일문고〉한테 고마워해야 해요. 이토록 사랑스레 가꾸어 연 마을책집이 있으니 머잖아 대구에 새롭게 아름다운 마을책집이 태어날 테고, 이 나라 곳곳에도 새롭게 사랑스러운 마을책집이 태어나리라 생각해요.”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참으로 숱한 마을책집이 사라져야 했습니다. 2010년대로 접어들 즈음에는 그야말로 떼죽음이었다고 할 만합니다. 거의 스무 해란 나날을 이 나라 마을책집은 죽음길 같은 나날을 보낸 셈일 텐데, 오히려 그 죽음길을 거쳐야 했기에 아주 새롭게 태어나자는 꿈을 곳곳에서 조용히 품을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더 작은 마을책집이 깨어납니다. 더 수수한 마을책집이 기지개를 켭니다. 더 빛나는 마을책집이 눈을 뜹니다. 더 사랑스러운, 아니 그저 사랑스럽고 상냥하면서 참한 마을책집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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