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위력으로 민음의 시 38
조은 지음 / 민음사 / 199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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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30


《사랑의 위력으로》

 조은

 민음사

 1991.10.20.



  멀구슬나무라고 있습니다. 저는 이 나무를 고흥이란 고장에 뿌리를 내리면서 제대로 마주했습니다. 처음 만난 멀구슬나무는 읍내 한복판에서 우람하게 자랐습니다. 얼마나 키가 크고 그늘이 아름다운지, 또 꽃은 얼마나 곱고 향긋한데다가 열매는 동글동글 앙증맞고 뭇새를 불러 겨우내 먹이가 되는지, 참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군청에서는 나무를 베어내고 이곳에 시멘트를 덮어 꽃밭하고 차댐터를 꾸미더군요. 아름드리라 해도 하루아침에 시멘트랑 자가용한테 밀립디다. 삶은 어디 있을까요. 사랑은 어디 있나요. 《사랑의 위력으로》에 ‘田園一期’라는 이야기꾸러미가 돋보입니다. 다만 이런 말치레를 꼭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한자를 딴 말치레를, 요새는 영어를 딴 말치레를 다들 하더군요. 시쓴님이 말치레 아닌 말살림을 헤아리면서 ‘시골쓰기’나 ‘시골살이’를 적바림하는 손길이었다면, 지난날이나 오늘날이나 멀구슬나무마냥 들이며 마을이며 숲에 고요하면서 풋풋한 이야기잔치를 이끄는 글빛이 될 만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먼발치에서 구경하듯 쓰는 이야기도 노래라면 노래이겠지만, 발치에서 피어나는 꽃송이를 아끼고 곁에서 돋아나는 잎사귀를 어루만지는 글쓰기가 된다면, 참말로 엄청난 사랑이 되리라 봅니다. ㅅㄴㄹ



그곳으로 옮기는 이삿짐을 꾸리며 가족들은 평화로운 날들이 주렁주렁 열리리라 믿었다. 즐비한 돼지우리와 뒷간 악취도 신비롭던 그 봄 잡목숲을 일궈 과실나무를 심었다. 어린 과실나무가 빗물을 걸러 먹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낮잠은 달고 깊었다. (田園一期 1/16쪽)


어른이 식사를 하고 계신다 / 명동지하도 계단에 앉아 잘린 대퇴부를 / 낡은 뼈를 내보이며 / 동전 몇 개를 육신 앞에 내세우며 / 오, 우리들 발길마다 채이는 먼지를 밥술에 얹어 식사를 하고 계신다. (나를 멈추게 하며/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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