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초밥왕 2 - 3 - World Stage
다이스케 테라사와 글.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트집하고 텃집 사이에 한 가지



《미스터 초밥왕 world stage 3》

 테라사와 다이스케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5.4.25.



  적잖은 사람이 한국을 떠납니다. 한국에서는 더 깊거나 넓게 배울 길이 없다고 여겨 이웃나라로 갑니다. 이웃나라에서 넓거나 깊게 배운 다음에 이 나라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그냥 그곳에 머물면서 조용히 살아가곤 합니다.


  이웃나라로 배움마실을 다녀올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나라에서 이웃나라로 배움마실을 보낼 적에는 ‘슬기롭게 배워서 사랑스레 뜻을 펼칠 만한 보금자리’를 건사할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이 나라가 돌아올 만한 나라여야겠지요. 이 나라에서 새롭게 뜻을 펼치면서 날개를 펼 만한 터전이어야겠지요.



“가장 무서운 것은, 불만이 있어도 표현하지 않는 손님이야. 점원의 태도나 맛에 불만이 있어도, 일절 입밖에 내지 않고 묵묵히 가게를 나가서, 우리에게 변명이나 개선의 기회를 주지 않고 두 번 다시 이 가게를 찾지 않는 거지.” (12∼13쪽)



  이웃나라에서 배운 다음에 그곳에 머무는 모습이란, 시골을 떠나 서울에서 배운 다음에 다시 시골로 가지 않고서 서울에 머무는 모습하고 닮습니다. 서울사람 가운데 아스라히 옛날부터 서울에 뿌리를 박은 이는 얼마나 될까요? 거의 모두 다른 고장에서 나고 자라서 서울로 배움마실을 왔다가 눌러앉지 않았을까요? 일자리를 찾아 서울에 깃든 다음에 어느새 뿌리를 내려서 구태여 시골집으로 안 돌아가는 셈 아닐까요?


  보금자리가 없다면 보금나라가 아닙니다. 보금마을도 안 되겠지요. 보금나라가 아니라면 애써 익히거나 갈고닦은 솜씨나 뜻을 펼 만하지 않을 테고, 이 나라에서 무엇이 어수룩하거나 모자라거나 덜떨어졌는가를 찬찬히 짚거나 따지거나 고치거나 바꿀 길이 없어 보인다는 소리라고 느낍니다. 시골을 떠나 서울로 간 다음에 시골로 돌아오지 않는 어린이·푸름이·젊은이도 매한가지라고 느껴요. 제 텃마을에서는 새로운 생각이나 목소리나 뜻을 받아들이거나 귀여겨듣는 일이 없으니 구태여 힘들게 텃마을로 안 돌아가겠지요.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생명의 초밥’으로 아버지는 멋지게 우승하게 됐죠. 마음은 반드시 전해진댔어요. 사장님의 초밥을 주고 싶은 사람은 누군가요?” (21쪽)



  어린이 쇼타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이란 손길로 초밥 한 줌을 쥐는 이야기를 다룬 제법 긴 만화가 있습니다. 한국에는 《미스터 초밥왕》이란 이름으로 나왔습니다만, 일본에서는 수수하게 “쇼타네 초밥”으로 나온 만화입니다.


  수수한 책이름을 혀에 얹으면서 생각했어요. 일본에서는 왜 이처럼 수수하게 이름을 붙였을까요? 말 그대로 ‘수수한 사람’이 수수한 꿈으로 수수한 손길을 펴는데, 이 수수한 손에서 더없이 따사롭고 아름다운 사랑이 깨어나니까 수수하게 책이름을 붙였겠지요.


  어린이 쇼타는 시나브로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쇼타는 아이를 낳아 돌봅니다. 《미스터 초밥왕 world stage 3》(테라사와 다이스케/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5)은 어른 쇼타가 낳은 아이가 나옵니다. 쇼타하고 맞붙은 젊은이도 제법 늙수그레한 나이가 되고, 이분이 낳은 아이는 쇼타하고 또래가 되어 만난다고 해요. 이 두 사람이 일본이란 판은 너무 ‘좁고 갑갑하고 막히고 낡’아서 싹 갈아치우려는 꿈을 키우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온갖 기법을 구사하고 재료에 소스나 향을 더해 입체적으로 맛을 내는 거야. 그래서 재료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 어디에나 퍼질 수 있었지.” (102쪽)


“좋은 재료가 있어야만 비로소 맛을 내는 요리라면, 세계에 널리 퍼지기 어렵지 않을까?” (103쪽)



  일본이란 나라에서만 산다면 일본이란 나라는 알더라도 이웃나라는 모를 테지요. 일본 훗카이도에서만 산다면 일본 훗카이도는 알더라도 오사카나 교토나 류우큐우나 도쿄는 도무지 모를 테고요. 일본 도쿄에서만 살아도 일본 여러 고장을 모를 만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떠한가 돌아봅니다. 한국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배운다면 한국이란 터전을 얼마나 넓거나 깊게 알까요? 경북 영양이라는 눈으로만 한국을 본다면? 전남 고흥이라는 눈으로만 한국을 바라본다면? 대구나 광주나 인천이나 부산이나 대전이라는 눈으로만 한국을 쳐다본다면?



“프랑스에도 이렇게 단순한 요리가 있구나.” “그야 당연하지. 일본도 집집마다 가이세키 요리(연회용 코스요리)를 먹지는 않잖아?” (131쪽)



  자꾸 트집을 잡는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굳이 토를 붙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트집이나 저런 토는 ‘더 헤아리면 한결 거듭나면서 가없이 눈부시도록 피어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트집을 잡아 보고 싶습니다. 투표권을 숱하게 쓰면서 지켜보자니, 선거알림글로 집에 날아온 종이를 펼치면 모든 이들이 더 목돈을 들이는 더 커다란 삽질을 하겠다는 다짐이 줄줄이 흐르더군요. 마을을 더 조그맣고 조용하게 돌보면서 숲이 되도록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아직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녹색당조차도 ‘풀빛’이 첫째 다짐이 되지 않습니다. 뭘 없애거나 막겠다는 다짐은 있되, 없애거나 막은 자리에 무엇을 어떻게 가꾸거나 지으면서 아름드리숲으로 나아가겠노라 하는 빛을 밝히지 못하더군요.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든, 어느 마을이 마음에 들어와서 찾아와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이든, 이 마을에서 조촐하게 살림을 짓고 꿈을 그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길을 북돋우거나 바라지하겠다는 다짐을 밝힌 이도 아직 찾아보지 못합니다. 어느 정당이나 후보자나 매한가지입니다. 다들 ‘서울로 보내기’에 얽매인달까요.


  삽질을 더 크게 벌이겠다는 다짐이 아주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만,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군수이든 도지사이든 시장이든 구청장이든, 하나같이 ‘삽질 다짐’은 있되 ‘숲 다짐’이나 ‘마을살이 다짐’이나 ‘이야기꽃 다짐’이 없다면, 돈을 들이지 않고도 아름답게 펼 만한 행정이며 문화이며 교육이라는 눈길이 없다면, 이들 정당이나 후보자는 이 나라에서 어떤 앞길을 보는 셈일까요. 왜 하나같이 목돈을 들이는 삽질에만 얽매일까요? 삽질을 하면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지니까?



“아들을 억지로 어부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웃기고 있네. 로봇도 아니고, 그럼 아들의 마음은 뭐가 되는데? 댁의 아들은 스스로 어부가 되기로 결정한 거야! 그걸 자기 탓이네 뭐네 하는 건 아들을 오히려 모욕하는 거라는 생각 안 들어요?” (171쪽)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 world stage》는 ‘world stage’라는 꼬리말처럼, 일본을 떠나거나 벗어나는 이야기가 바탕입니다. 일본사람 스스로 일본이란 나라는 더없이 막혔다고, 갑갑하다고, 꼴통이라고, 얼간이라고, 머저리라고, 수렁에서 헤어나올 줄 모른다고, 낡아빠진 틀을 ‘전통·문화’란 이름으로 부여잡고서 썩어문드러진다고, 매우 날선 호통을 늘어놓습니다.


  이 만화에 흐르는 곳을 ‘일본’이 아닌 ‘한국’으로 돌려놓고서 생각할 만하다고 봅니다. 한국은 얼마나 안 막힌 곳일까요? 이 나라는 얼마나 안 갑갑하거나 안 꼴통일까요? 이 나라는 안 얼간이나 안 머저리인가요?


  벼슬아치나 나라지기는 곧 죽어도 대학입시를 없애지 못할 듯합니다. 시골이며 큰고장이며 젊은이는 차춤 줄어들고, 시골은 더더군다나 사람이 크게 줄어드는데, 거꾸로 공무원은 자꾸 늘어납니다. 이 거꾸로질은 어떻게 바로세워야 좋을까요. 공무원 일삯은 자꾸자꾸 오르고 나라빚은 자꾸자꾸 늘어납니다. 맑게 흐르는 바람이 피어나는 숲은 줄어들고, 논밭도 줄어드는데, 이 자리에는 찻길에 공장에 발전소에 공항에 관광단지에 골프장에 호텔에 쇼핑센터에 …… 그저 삽질판입니다. 이 거꾸로질을 돌려세우거나 살림길로 바꾸어 내려는 일꾼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건 자기밖에 없어! 삶이 자기 거라면 죽음 역시 자기 거라고! 영감님이 책임을 느끼는 건 자유지만, 아들이 과연 기뻐할까? 불쌍한 인생이라고 멋대로 동정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을까?” (177쪽)



  트집하고 텃집 사이에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슬기로운 초밥지기는 ‘투덜거리는 손님한테서 배운다’고 말합니다. 투덜거릴 적에는 투덜거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으니, 이 투덜질을 더 파고들어서 스스로 손맛을 더욱 알차게 가다듬을 노릇이라고 말합니다.


  틈새를 찾아내어 보듬기에 삶터가 됩니다. 그저 트이기만 한 곳은 바람이 그치지 않습니다. 트인 곳에 알맞게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얹고 지붕을 얹으며 칸을 놓습니다. 트이기만 한 곳이 아닌, 살아갈 틈이 사랑스러운 터전으로 바꾸어 내는 손길입니다.


  텃집은 보금자리입니다. 텃집을 박차고 나와서 온누리를 두루 다닐 만합니다. 두루 보고 난 다음에는 즐겁게 텃집으로 돌아갈 만합니다. 우리 어버이가 사랑으로 가꾼 보금자리에 새롭게 손길을 보태거나 덧대어, 때로는 아예 새집을 지어서, 한결 푸르면서 파랗게 빛나는 살림길을 여밀 만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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