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마음사전 걷는사람 에세이 6
현택훈 지음, 박들 그림 / 걷는사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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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24


《제주어 마음사전

 현택훈 글

 박들 그림

 걷는사람

 2019.11.20.



쌀밥을 ‘곤밥’이라 부른 것은 보리밥이나 조밥을 주로 보다가 쌀밥을 보니 그 하얀 빛깔이 고와서 ‘곤밥’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23쪽)


할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저 ‘굴룬각시’ 보라.” 그 말은 부정적인 여자를 보며 하는 말이었다. ‘굴룬각시’가 있으니 ‘굴룬서방’도 있다. 물론 ‘내연남’이라는 뜻이다. (37쪽)


그런데 이젠 제주도 하천에서 뱀을 보기 어렵다. 버려진 농약병이 가끔 보일 뿐이다. 뱀도 개구리도 아이들도 없다. (50쪽)


곤조. 일본말이다. 우리말로 하면 ‘근성’이다. 삼촌은 그 말을 할 때만은 구부정한 어깨를 순간 활짝 폈다. (71쪽)


중학생 때 잠깐 만난 그 교생 선생님 때문에 나는 이렇게 시를 쓰고 있다. ‘몰멩진’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준 그 교생 선생님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계실까. (87쪽)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가 오늘 살아가는 하루를 그대로 나타냅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이 삶을 바라보고 생각하기에 저마다 다른 삶말이 흐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를 낳아 돌본 어버이가 맨 먼저 알려주었습니다. 이윽고 우리 어버이를 둘러싼 여러 이웃이며 동무가 찾아와서 들려주었지요. 어느새 찾아간 학교나 일터나 삶터 곳곳에서 보고 듣고 마주한 온갖 말 가운데 스스로 마음에 든다고 여긴 몇 가지를 차곡차곡 품으면서 생각을 한껏 폅니다.


  서울사람은 서울말을 씁니다. 부천사람은 부천말을 쓰고, 하남사람은 하남말을 씁니다. 고장이란 틀로는 경기도일 테지만, 고을은 저마다 다르니 다른 말씨예요. 고장이란 틀로는 경상도라 하더라도 대구랑 부사 말씨는 대구랑 부산 삶터만큼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제주사람이 제주란 터전에서 언제나 마주하면서 맞아들인 제주말은 어떤 빛깔이거나 결일까요?


  시를 쓰는 길을 걸으며 제주말을 새삼스레 돌아본 이야기가 《제주어 마음사전》(현택훈 글·박들 그림, 걷는사람, 2019)에 한 땀 두 땀 흐릅니다. 글쓴님은 어릴 적 어버이한테서 들은 말을, 또 할매가 읊은 말을, 또 동무에 여러 살붙이가 알린 말을 문득 곱새깁니다. 어릴 적에는 심드렁하게 지나치던 말씨가 어른이 되고 보니 새삼스럽다지요. 어릴 적부터 간직하던 말씨가 어른이 되고 보니 더욱 빛난다지요.


  이 책을 보면 글쓴님은 ‘곤조’는 일본말이고 ‘근성’이 한국말이라 적은 대목이 있는데, 이는 알맞지 않아요. ‘근성’이란 한자말을 일본사람이 ‘곤조’로 읽을 뿐이요, ‘근성’은 한국말이 아니거든요. 한국말은 ‘배짱’입니다. 또는 ‘뱃심’이에요.

  한 가지 제주말을 놓고서 한 가지 삶자락을 펼쳐 놓은 《제주어 마음사전》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제주님은 제주말로 제주살이를 그렸다면, 부산님은 부산말로 부산살이를 그리면 재미있을 테고, 강릉님은 강릉말로 강릉살이를 그리면 아름답겠구나 싶어요.



  서울 표준말은 ‘서울에서 표준으로 나고 자라며 살아온 사람’한테는 걸맞을는지 모르나, 나라 곳곳 다 다른 터전에 따라 다 다르게 나고 자라며 꿈꾼 사람한테는 썩 어울릴 만하지 않다고 느껴요. 같은 낱말 하나를 놓고서 다 다른 삶이 자란다는 숨결을, 그냥그냥 낱말 하나가 아닌 저마다 다른 사랑을 받고 태어나서 저마다 다른 꿈을 키운 어제를 오늘 되새겨 본다면, “순창말 마음노래”나 “봉화말 마음꾸러미”나 “홍천말 마음밭” 같은 책이 하나둘 깨어날 만하지 싶습니다. 다 다른 고장 다 다른 글님이 다 다른 삶을 노래한다면 참으로 좋겠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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