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에 다달이 내던 돈을 끊으려면 탈당계를 내야 한단다. 탈당계를 써서 보냈다. 푸른눈, 푸른길, 푸른삶, 푸른넋, 푸른집, 푸른말, 이러한 풀빛을 헤아리지 않는 곳은 녹색당일 수 없다.


푸른 정치를 모르겠으면, 그리고 집행부나 선본이나 비례대표후보 뜻하고 당원 뜻이 안 맞는다 싶으면, 구태여 녹색당이란 이름을 쓰지 않기를 바란다. 이 봄에 들이며 숲에 얼마나 싱그러운 들풀(들나물)이 가득 돋는 줄 아는가? 들풀을 잊은 도시 정치판에 풀씨를 심는 길을 가는 곳이 녹색당일 텐데, 한국에서 오늘 녹색당 일꾼은 어쩐지 ‘일꾼’이나 ‘심부름꾼’이 아닌 ‘관리자’나 ‘벼슬아치’나 ‘지식인’ 노릇을 하려고 드는구나 싶다.


농사꾼이 되지 않아도 된다. ‘풀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탈당계에 적은 글을 옮기면서 녹색당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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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은 풀꽃나무를 첫째로 바라보는 마음에서 비롯한 정당입니다. 풀꽃나무를 삶 한복판에 놓으면서 시골이든 서울이든 숲으로 가꾸는 길을 정치행정에서 제대로 알아보도록 이야기하고 알리며 어깨동무하는 뜻을 펴려는 정당입니다. 풀꽃나무하고 숲을 바탕으로 하기에, 여기에서 ‘여럿(다양성)’을 아우르는 눈빛으로 자라납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 녹색당은은 풀꽃나무도 숲도 어디론가 사라진 채 ‘어깨동무하는 여러 눈길’마저 가뭇없이 종잡지 못하는데다가 외눈박이가 되는군요. 푸르지 않은 녹색당이라면 더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푸른길을 잃거나 잊은 이들로는 푸른 정치를 밝히지 못하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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